"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법부를 선출직으로 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다수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 여성 최초 대법관인 김영란(54·사법연수원 11기) 대법관이 24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며 강조한 것은 다름아닌 '소수자에 대한 사법부의 배려' 였다. 그는 이날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판사라는 직업은 판단하고 처벌하는 직업"이라며 "이 직업을 통해 얼마나 힘든 사람을 위로해 주었는지, 얼마나 슬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는지, 얼마나 답답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는지 항상 자문해왔다"고 지난 6년을 회고했다.
81년 법관 생활을 시작해 법조계에서 소수로 분류되는 여성으로 생활했던 김 대법관이지만, 그가 말하는 소수는 여성만이 아닌 대중의 그늘 속에 있는 사회적 약자였다. 여성의 종중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 이외에도 학교의 종교행사 참여 강요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고 아직까지 존치되고 있는 사형제를 반대했다.
호주제 반대 의견 및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 견해 등 약자보호를 위해 그가 대법원에 남긴 족적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참여연대는 이런 김 대법관에 대해 "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하려 노력했고 환경권, 노동권 등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강조하는 등 시민사회의 가치기준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놨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다수자의 권리를 확인하는 것에서 사법부의 존재 근거를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적 약자보호를 위한 사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수자의 권리를 소수자의 그것과 단순히 대체하는 것은 소수자가 다시 다수자가 되는 논리이기에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법치의 혜택을 점점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법부의 나아갈 방향도 제시했다.
2004년 남성 일색의 대법관 자리에 '여성 1호 대법관'으로서 지낸 6년이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고 김 대법관은 소회를 밝혔다. 그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최초의 여성대법관으로서 출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몹시 불편하고 두려운 가운데 업무에 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법관은 출세나 승진의 자리가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바람직한 최선의 길을 찾는 고뇌의 자리였다"고 밝힌 그는 "좋은 대법관이 되는 것만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길이라고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면서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 대법관은 여느 대법관과 달리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말로,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남겼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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