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가족의 진실을 밀도 있게 포착한 두 편의 연극이 21세기 한국을 돌아보게 한다. 탄탄한 창작 희곡에 근거한 무대,‘장례의 기술’과 ‘마누래 꽃동산’은 살아 있는 언어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할 계기다.
“엄마 위하면 살아 계실 적에 잘하지, 엄마가 너 싸고돌다가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은 게
한두 번이냐? ” “까놓고 말해서 엄마가 누구 땜에 병 얻었냐? 잘난 네 놈 공부시킨다고
잠도 못 자고 손에 피가 나도록 일한 거 아냐? 그런 사람이 죽어 가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나와 봐? 엄마가 죽어가면서 너 이름만 몇 번이나 불렀는데!”
발인 전날 상갓집에서 세 남매 간에 터져 나오는 악다구니다. 살아보려 몸부림치지만
한결같이 막장 인생인 이들은 5년 만에 만난 처지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이들이 유산 문제로 험악한 풍경을 연출한다.
극단 마방진극공작소의‘장례의 기술’에서 삶은 마지막 속옷까지 벗어 던진다. 처음에는 유산 문제로 머리를 맞대게 됐지만 이들은 각자의 참모습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러나 이 무대는 무거운 주제의 버거움을 비껴내는 연극적 미덕으로 가득 차 있다. 기발한 시청각적 장치는 대표적 예다. 가운데 커다랗게 놓인 영정 사진틀 속에 세상을 뜬 아버지가 나타나 더러 무대에 참견하는 장면은 무대를 생동감 있게 하는 장치다. 누구나 잘 아는 노래 ‘즐거운 나의 집’과 ‘Over The Rainbow’를 테마곡 삼아 장면이 바뀔 때마다 쓰는 것은 극적 아이러니를 더한다. 전혀 즐거울 것 없는 이 집에 대한 야유이지만, 객석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이 콩가루 집안에도 행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연출자의 의도를 읽게 된다. 임지혜 작, 이기룡 연출. 정도원 유은석 등 출연. 28일~9월 12일 마방진극공작소. 1544-1555
파파프로덕션의 ‘마누래 꽃동산’의 시선은 한결 부드럽다. “시설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하루 세 끼 밥 나와 물 나와, 공기 좋아, 바람 좋아 (중략) 뭐, 굳이 자식하고 살 거 있어야?”2007년 이 기획사의 창작 희곡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생동감 넘치는 언어가 말장난이 판치는 세상을 되돌려 놓을 기세다.
강화도의 장터를 배경으로 중년과 노인들이 펼치는 이 무대는 수더분한 언어 속에 번득이는 삶의 통찰이 촌철 같다. 죽음마저도 이들은 일상으로 끌어 안는다. 장윤진 작, 구태환 연출, 이현순 고인배 등 출연. 9월 3일~10월 3일 강남 동양아트홀. (02)515-6510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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