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이 범람해 신의주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수십 대의 공군 비행기와 해군 함정이 출동해 위험에 처해 있던 5,150명의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보도에선 생략됐지만 그 과정에서 수백명의 사상자가 있었으리라. 이례적으로 상세한 보도들 가운데 마안도 위화도 등 낯설지 않은 지명들이 들어 있어 '한반도의 홍수'임을 일깨워 준다. 동해의 독도, 남해의 마라도, 서해의 마안도는 어릴 적 지리시간에 각각 우리나라 동ㆍ남ㆍ서쪽 '끝의 땅'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다. 압록강 하구 끝 마안도까지 침수된 모양이다.
■ 조선왕조를 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388년)은 폭우가 원인이었다. 압록강 100여 개 하중도(河中島) 가운데 가장 큰 섬(12.2㎢ 여의도의 1.5배)으로, 고려군이 중국(명)의 요동정벌에 나섰을 당시 최전방이었다. 우군통제사 이성계가 위화도에 도착했을 때는 음력 5월, 장마가 시작돼 비가 많았다. 이성계는 4대 불가론을 내세워 진군을 거부했는데, 네 번째 이유가 '많은 비로 아교가 녹아 활이 풀어지고, 군사들이 질병을 앓는다'는 것이었다. 조정의 진군 명령을 거부하고 회군해 역성(易姓)혁명을 일으켰다. 그 위화도가 절반 이상 강물에 잠겼다.
■ 신의주 동쪽 위화도는 서쪽의 황금평과 함께 북한으로선 대중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양대 섬이다. 황금물결 평야라는 황금평은 면적도 넓지만(11.5㎢) 중국 단둥(丹東)과 작은 개울로 경계를 짓고 있다. 조선과 청나라가 오랫동안 영유권을 다퉈온 곳이기도 하다.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상하이를 구경하고 화들짝 놀라 이듬해 이 일대를 특별행정구역으로 선포하고 50년간 입법ㆍ사법ㆍ행정 자치권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좌(左)황금평 우(右)위화도'를 경제ㆍ교역의 중심으로 삼으려 했으나 이번 홍수로 그 계획이 물 건너 갈 위기에 처했다.
■ 북한은 지금 '우리의 피해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넌지시 보내고 있다. 1995년 북한 전역에 홍수가 닥쳤을 당시 비공식 채널을 통해 "(도움이)빠를수록, 많을수록 좋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파격적 지원을 함으로써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다. 2006년에 다시 큰 홍수가 났을 때 북한은 공개적으로 '95년은 고난의 행군, 지금은 생사의 기로'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베이징 남북적십자 회담이 한동안 정례화했다. 신의주 일대의 홍수와 침수는 북한에겐 1995년이나 2006년 못지않은 타격이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