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로 거리는 현대차 물결… 직장인이 갖고싶은 '꿈의 차'
지난달 29일 이집트 카이로 현대차 아프리카지역본부 소속 정현준(46) 차장은 급하게 리비아 트리폴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의 가방 속에는 서류 대신 오일 펌프가 들어 있었다. 리비아 현대차 대리점이 애프터서비스를 위한 긴급 오더를 알려 왔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정상 국제특송에 의뢰해도 소요되는 시간은 최소한 4일. 회의 끝에 이장호 본부장이 택한 방법은 직접 운송키로 한 것.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현대모비스 물류센터에서 부품을 받아 결국 24시간 만에 부품을 공급하는 007작전을 펼쳤다. 적어도 1주일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던 고객의 얼굴이 함박웃음으로 바뀐 것은 물론이다.
문명의 탄생지에 코리아 열풍이 불고 있다. 1990년대까지 간헐적으로 건설업체들이 주로 진출하던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나일강 문명 지역에 현대ㆍ기아차를 비롯, LG전자와 삼성전자 그리고 최근에는 중견 기업까지 속속 진출하며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 이집트는 8,300만명의 인구 및 구매력을 감안하면 ‘포스트 차이나’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 시장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현대ㆍ기아차의 이집트 성공 사례는 우리 기업의 달라진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집트는 도요타와 닛산 등 일본차 업체가 시장을 주도한 곳이다. 그러나 특유의 돌파력으로 2005년 이후로는 현대ㆍ기아차가 승용차 부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제로 카이로 시내에는 현대ㆍ기아차 로고를 단 차량들이 즐비하다.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 엑센트, 쏘나타는 물론 한국에선 보기 힘든 매트릭스(국내명 라비타)와 소형차 ‘i10’도 곧잘 눈에 띈다. 한국뿐 아니라 터키와 인도에서 생산된 전략형 차종까지 투입된 결과다. 카이로 시내 한복판 알렉산드리아 거리에서 만난 나스르 앨 아페즈(37)씨는 “현대차는 이집트에서 고급차로 인식되고 있어, 현대차를 탄다는 것은 성공의 또 다른 반증”이라며 “직장인들 대부분 현대차를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시장점유율에서도 현대ㆍ기아차는 지난해 이집트 승용차 내수 부문에서 35%를 차지, 2위 GM(18%)을 2배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한때 시장을 호령했던 닛산(5.2%)과 도요타(4.4%)는 한자릿수로 주저 앉았다. 비결은 다름아닌 서비스에 있다. 애프터서비스 개념이 없는 이집트 시장에 맞춤형 서비스를 도입한 것. 현대ㆍ기아차는 구매자를 곧바로 서비스 회원으로 관리, 정기 점검 서비스를 펴고 있다. 물론 현대모비스가 동반 진출, 대규모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하고 있는 것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장기적으로 이집트를 거점으로 전체 아프리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파트너로 활약하며 아프리카에서 입지를 다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100만개의 축구공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는 ‘아프리카 드림볼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카이로 시내 핼완 거리에서 만난 하샘 모하무드(42)씨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축구는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현대ㆍ기아차의 축구공은 어른이 되어도 평생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ㆍ기아차가 성공을 거두면서 우리 기업의 이집트 진출도 더욱 활발해 지고 있다. LG전자가 대표적인 예다. LG전자의 휴대전화 ‘메카폰’은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정확하게 상품화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이슬람인들을 위해 휴대폰에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기능을 갖춘 것. 최근에는 이슬람 경전 코란을 음성과 문자로 제공하는 기능을 갖춘 새 제품을 내놔, 시장의 호응을 받고 있다.
이집트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며 포스코, 두산중공업, OCI 상사 등 다른 기업들도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또 동일 방직, 한산실업, 샴스코 등 중소기업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노 철(49) KOTRA 카이로KBC 센터장은 “비교적 정치적으로 안정된 이집트에서 성공할 경우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선점도 수월해질 수 밖에 없다”며 “아직 10%가 안 되는 이집트 중산층이 어떤 속도로 성장하고, 아프리카 경제가 얼마나 빨리 발전하느냐가 우리 기업의 투자 시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 만만찮은 차이나 돌풍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와 나일강 유역엔 한류 바람도 거세지만 ‘메이드인 차이나’(Made in China) 열풍도 뜨겁다. 일부 상품은 우리 기업을 위협할 정도다.
의류부터 아이들 장남감까지 주요 생필품은 중국 것이 아닌 게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라오의 무덤이 있는 이집트 중부 관광 명소 룩소르에서도 기념품은 온통 1~10달러의 중국산이다. 이처럼 중국산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다름 아닌 가격 때문. 이집트가 아프리카에서는 경제적으로 상위권이라고 하지만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2,500달러가 되지 않는 현실(2009년 2,457달러)을 감안하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경공업 소비재에서 재미를 본 중국은 최근에는 자동차, 휴대폰, 전자제품까지 진출, 우리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마티즈 디자인을 베껴 우리에게 알려진 중국의 ‘체리’차는 ‘스페랜자’라는 브랜드로 아예 딜러망을 갖춰 이집트 시장에 달려 들었을 정도다. 카이로 시내 스페랜자 딜러점에는 GM대우차의 매그너스와 똑같이 생긴 차까지 볼 수 있다. 차급별로 일본차보다는 30%, 현대ㆍ기아차보다도 20% 저렴한 가격이 소비자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6년 1,600여대 판매에 불과했던 스페랜자는 지난해 1만2,000대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했다. 현대ㆍ기아차, GM에 이어 단숨에 승용차 시장 점유율 3위에 오른 것이다.
자동차뿐 아니다. 카이로 도심에선 어디서든 중국산 휴대폰을 쓰는 이집트인을 만날 수 있다. 중국은 또 천연가스 등 자원 확보를 위해 이집트에 금융 지원 공세까지 펴고 있다.
중국 기업의 기세는 한ㆍ중ㆍ일간 수출 추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2006년과 2009년 이집트 수출량을 비교할 때 우리나라와 일본은 각각 6억7,000만달러와 8억9,000만달러 가량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중국은 무려 28억달러 가까이 증가했다.
현지 기업인 알 하파즈씨는 “한국 제품은 중국산보다는 일본산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면서도 “한국 제품이 가격의 중국, 품질의 일본 기업들로부터 시장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 현대모비스의 샐리 아이만
이집트 젊은이에게 우리나라는 동경의 대상이다. 이곳에 소개된 각종 드라마가 큰 역할을 한데다가 우리 기업의 이미지도 좋아, 한국 기업은 취업 선호 1순위다.
대학 졸업 후 현대모비스 물류센터에 취직한 샐리 아이만(22ㆍ사진)씨는 꿈을 이룬 경우다. 카이로에서 4시간을 달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현대모비스에서 그를 만났다.
첫 인사로 아이만씨는 대뜸 “한국 사람을 보니까 반갑다”며 한국말을 건네더니 “샬람!(이집트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 이라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전교 석차 1위(이집트 전체 31등)였다. 영어와 프랑스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런 그가 대학 진학시엔 전공으로 한국어를 선택, 이집트 명문 아인샘스대 한국어과에 진학했다. 그는 “한국이 앞으로 더 발전할 것으로 보여 선택했다” 며 “2005년 이집트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겨울연가’ 속에서 하얀 눈 속의 아름다운 장면들도 영향을 미쳤다”고 웃어 보였다.
이집트 대학에 한국어과가 생긴 것은 2005년 아인샘스대학이 처음이다. 특히 2006년 한ㆍ이집트 정상회담이 열리고 나서는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아졌다. 현재 110명 정도의 한국어 전공 학생이 있는데, 졸업 후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이집트에 있는 한국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다. 특히 아직 여성들에게 문호가 넓지 않은 이집트 사정상, 여학생들에게는 한국 기업 취직은 꿈과 같은 일이다.
아이만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3학년 때인 지난해 서울에 유학까지 갔다 왔다. 서강대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 신분으로 수학한 것. 졸업 후 지난 5월 그에게 기회가 찾아 왔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현대모비스 물류센터에서 한국어에 능통한 이를 찾은 것. 두 차례의 면접 끝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아이만씨는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이집트에 진출했으면 좋겠다”며 “한국어 공부 1세대로서 좋은 평가를 받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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