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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기자의 캔버스] 도라산 벽화 철거 사건으로 본 미술품 저작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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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기자의 캔버스] 도라산 벽화 철거 사건으로 본 미술품 저작권 문제

입력
2010.08.2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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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 권리를 가질까. 컬렉터가 작품을 구입한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변형이나 훼손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정당할까. 만약 그 컬렉터가 정부라면?

최근 화가 이반(70)씨가 경의선 철도 도라산역에 그렸던 벽화가 작가 동의 없이 철거된 데 대해 항의하며 열었던 기자회견은 미술품의 소유권과 저작권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씨는 통일부의 요청을 받고 2005~2007년 도라산역의 벽과 기둥에 벽화를 그렸다. 한용운의 생명사상을 형상화한 14점으로 구성된 이 벽화는 길이 97m, 폭 2.8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지난 5월 도라산역에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작품이 안보이더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통일부에 질의서를 보낸 결과 “어둡고 난해해 이해하기 어렵고, 민중화 같다는 관람객들의 반응 때문에 철거했다”는 답을 들었다. 심지어 분리 과정에서 작품은 일부 손상을 입었다. 통일부는 “소유권이 정부에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고, 이씨는 “인격저작권은 여전히 작가에게 있기에 명백한 저작권 침해 사례”라며 맞서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6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서울랩소디’의 동영상 일부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홍보 동영상으로 대체돼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2007년 미술작가 최정화씨가 창원시청을 소재로 만든 설치작업이 ‘무당집 같다’는 시민들의 항의로 철거되기도 했다. 앞서 2003년에는 이동기, 강영민씨가 서울 을지로3가 지하철역에 그린 벽화가 시민들의 거부반응으로 사라져버렸다.

도라산역 벽화 철거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부를 떠나, 통보조차 하지 않고 작품 철거를 강행한 통일부에 도의적 책임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간단치 않다. 한국저작권협회 법정책연구팀 관계자는 이번 논란에 대해 “관련 판례가 없어 쉽게 결론내리기 어렵다. 작품을 철거한 것이 작가가 가진 인격저작권 중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되느냐 하는 부분이 쟁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미술품이라면 전시 여부 결정권이 소유권자에 있지만, 이씨의 벽화는 특정 장소에 특정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이기에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임의로 변형한 백남준의 ‘서울랩소디’ 사건 같은 경우는 명백한 동일성유지권 침해다.

이런 일들이 여러 차례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지금껏 제대로 된 논의 과정이 없었다. 대체로 힘없는 작가 쪽에서 고개를 숙인 채 흐지부지됐다. 1989년 미국에서도 리처드 세라의 공공미술 작품 ‘기울어진 호’가 보행에 방해가 된다는 시민들의 항의로 철거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을 내기까지 작가와 시민들은 몇년에 걸쳐 공청회를 열고 토론을 벌였다. 도라산역 벽화 철거 논란이 국내 공공미술, 그리고 미술품 저작권에 대한 인식 전환에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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