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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수 두번째 장편소설 '설계자들'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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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수 두번째 장편소설 '설계자들' 발표

입력
2010.08.2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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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앞에서 착상한 작품입니다. 신호등이 서라면 서고 왼쪽으로 가라면 그리하고, 사람의 동선은 이미 결정돼 있구나, 그것도 신호등을 설계한 이가 정한 몇 가지 조합에 의해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설가 김언수(38)씨가 두 번째 장편소설 (문학동네 발행)을 발표했다. 첫 장편이자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2006)을 통해 참신한 상상력과 정교한 필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이번 소설에서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한, 암살자들의 세계 ‘푸주’를 창조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 래생(來生)은 푸주의 터줏대감인 너구리 영감의 양자이자 영감이 이끄는 전통의 암살 청부 조직인 ‘개들의 도서관’ 소속 킬러. 소설은 래생이 군사정권 시절 권부에 있었던 노인을 암살하는 장면을 마치 헤밍웨이의 단편처럼 날렵하게 서술하며 시작하는데, 이 암살 건은 푸주의 새로운 실력자인 한자가 도서관에 하청한 것이다. 하지만 너구리 영감은 노인의 시체를 현장에 그대로 두라는 한자의 ‘설계’를 어기고 시체를 화장한다. 이로써 푸주의 신구 권력 간 갈등이 표면으로 불거진다.

그 자신도 도서관 출신인 한자는 유학을 다녀와 기업형 보안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암살 청부 업자. 그는 대선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일련의 암살 사건을 설계한 기관의 의뢰를 받은 것을 계기로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지려던 참이었다. 한자는 너구리 영감의 측근을 하나씩 제거하며 도서관을 무력화시킨다. 가족과 같던 동료들을 잃고 자신도 죽을 위기에 처한 래생은 너구리 영감 몰래 한자에 대한 복수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푸주와 연계된 어둠의 권력을 무너뜨리려는 미토를 만나게 된다.

권부-암살 청부 조직-암살자로 위계화된 푸주의 세계에서 래생과 같은 암살자들은 소모품처럼 쓰이다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다. “장치의 일부로 살아온 톱니가 시계태엽에서 튕겨나왔는데 자기가 없어도 여전히 째깍째깍 잘도 돌아가는 거대하고 복잡한 시계의 내부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259쪽)은 비단 소설 속 래생만의 비애는 아닐 것이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난전 같았던 설계의 세계”가 한자와 같은 엘리트에 의해 “깔끔하고 편리한 대형마트의 세계”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어떤 현실을 은유하는지도 명확하다.

래생은 푸주의 세계를 ‘일종의 시스템’이라고 부르며 거기 맞서고자 하는 동료 킬러에게 충고한다. “자넨 칼을 들고 올라가서 맨 꼭대기에 있는 놈을 찌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곳엔 아무도 없어. 그곳에 있는 것은 텅 빈 의자뿐이니까.”(94쪽) 세계는 개선할 수 없다는 도저한 비관주의자인 래생은, 그러나 스스로의 운명에 맞서듯 미토와 손을 잡고 그 ‘텅 빈 의자’를 부수고자 한다.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로만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이야기로서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을 반감하는 일이다. 군더더기 없이 짧고 단정한 문장으로 작가 김씨는 푸주라는 가상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한다. 과하지 않은 유머 감각과 더불어 이야기의 긴장을 끝까지 잃지 않는 작가의 긴 호흡은 이 소설의 미덕을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사항이다. “이야기로서 자족적인 소설을 써야지, 이야기가 이야기답지 않은 것을 담는 것은 영 질색”이라는 김씨의 말을 입증할 만한 작품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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