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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1991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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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1991년, 이사

입력
2010.08.22 12:03
0 0

박희수

1

짐을 싸는 어머니의 손길 너머로 언 먼지들의 초겨울이 조금씩 숨을 내쉬었다. 구름이 죽는 곳에서 엷어지는 풍경은 작은 잔금들을 식은 유자차 위에 띄운다. 어디 갈 데가 없으려구요. 정류장에서 정류장으로, 다시 역으로 이어지는 실선은 공책 위에 핏기 없는 흰 별자리를 남겼다. 창문들의 무심한 시선에 트인 손등을 감추려고 소년은 자꾸 낡은 스웨터의 소매 끝을 손가락 마디가 오는 데까지 끌어내린다. 눈에 어두운 원이 쏟아진다. 창공에 비행기가 긋는 평화로운 선(線)

2

찬 강물은

하늘을 떠돌고

이마 끝에

서리를 맺고

새들이 죽는 겨울

낙엽이

마른 길을 깃털처럼 품어주었다

● 분식점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옆에 앉은 여자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군요. 그러다가 한 여자가 “나는 누가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그렇게 물으면 다 싫어, 라고 대답해”라고 말하더군요. 하긴 지난 겨울이나 이번 여름이나 무슨 뒤끝이 이렇게 길고 대단한지 모르겠어요. 정말 겨울도 싫고 여름도 싫어요, 라고 나도 말하려다가도 또 이런 생각도 들어요. 왔다가 가는 게 계절이 아니라 나라고 치면, 그러니까 내가 여행자여서 더운 나라로 여행했다고 치면, 이 더위도 인상적인 더위가 되지 않을까요? 여행지에서라면 기온이 더 올라가도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여행자처럼 살면 “그건 정말 싫어!”, 그런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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