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중국 랴오닝(遼寧)성에 추락한 북한의 미그(MiG) 21기는 북한 공군의 주력 요격기다. 옛 소련 미코얀-구레비치(Mikoyan-Gurevich) 제작소가 1959년 처음 생산한 미그 21은 최고속도 마하 2의 초음속기로, 비교적 작고 가벼운 기체에 비해 속도와 상승력이 뛰어나다. 요격과 전투 임무를 함께 수행할 수 있어 옛 소련의 대표적 성공작으로 꼽히며 공산권의 표준전투기 역할을 했다. 1985년까지 1만1,496대가 생산돼 동구권과 이집트 시리아 중국 인도 베트남 등 50개국이 사용했다. 중동전과 베트남전에서는 미국의 F-104, 프랑스제 미라주 등에 필적하는 공중전 능력을 보였다.
■북한은 1966년부터 소련과 중국에서 미그 21기 200여대를 도입했다. 이 가운데 몇 십대가 아직 훈련용 등으로 남아 있고, 1985년 추가 도입한 150대와 1999년 키르기스스탄에서 들여온 38대가 공군 주력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미그 23기 50여대와 최신예 미그 29기 40대 가량은 대부분 평양 방어용으로 순천, 온천 등 주변 기지에 배치됐다. 미그 21은 평양 외곽과 동ㆍ서해안, 휴전선 지역 등에 널리 배치돼 우리 공군의 F-5기와 비슷하게 긴급요격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추락한 미그 21기는 신의주 부근에서 이륙한 점에 비춰, 요격기가 아니라 훈련용으로 추정된다. 북한 공군은 평북 의주와 양강도 혜산, 함북 길주 등 중국 국경 가까이 훈련비행단이 있다. 평소 압록강 상공에서 저공비행 훈련을 하는 모습이 목격된다고 한다. 추락한 미그 21기는 국경에서 200km 가량 떨어진 푸순(撫順)현 농촌까지 저공으로 날아와 동체 착륙하듯 밭에 미끄러지다 농가에 처박혔다. 중국 신화통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 “기계 고장으로 항로를 이탈, 중국 영공으로 잘못 들어왔다”고 전했다.
■미그 21기는 단거리 요격용으로 개발돼 개량형도 항속거리 1,000km, 항속시간 45분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연료의 3분의 2 이상을 소진하면 무게중심이 기체 뒤로 쏠려 비행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사고기도 낡은 기체나 계기의 고장으로 방향을 잃고 비행하다가 연료가 소진되면서 저절로 추락하거나 불시착을 시도한 듯하다. 화재가 전혀 없었던 점 등이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애초 이런저런 사실과 사고 정황은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아무런 근거도 없이‘탈북’에 ‘러시아행’까지 요란하게 추리한 우리 언론으로서는 무색한 노릇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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