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회사원 허모(43)씨 부부는 2006년 2월17일 외동딸 미연(당시 11세)양을 잃었다. 전날 서울 용문동 비디오대여점에 다녀온다던 딸은 수십㎞ 떨어진 경기 포천시의 한 논바닥에서 발견됐다. 인근 신발가게 주인이 꾀어 성폭행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죽이고 시신을 불태운 것이었다.
허씨 부부는 딸을 잃은 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다 10개월 만인 2007년 1월 ‘아름다운 재단’을 찾았다. 슬픔이 분노로 변하지 않도록 선행을 베풀며 사는 것만이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자신들의 사연은 숨긴 채 매년 1,000만원씩 10년간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재단과 약속했다. 다만 범죄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써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미연이 수호기금’은 4년이 지난 현재 5,000만원이나 모였다. 부부가 미연양 기일과 여름 휴가철마다 기부를 하며 당초 약속한 것보다 더 금액을 기부한 데다, 자식 잃은 슬픔을 나눔으로 승화시킨 부부의 사연을 들은 2,000여명의 시민도 그 뜻에 동참하겠다며 온정을 보탠 덕이다.
기금은 그간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를 통해 미연이가 당한 일과 같은 이유로 상처를 입은 강력범죄 피해자 열여덟 가족에게 총 3,500만원이 전해졌다. 유영철ㆍ정남규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 가족, 가게를 보다가 금품을 빼앗기고 살해당한 아주머니 가족 등이 학업ㆍ의료 등의 생활 지원을 받았다. 오토바이 소매치기에게 다쳐 한동안 일손을 놓아야 했던 한 기부금 수혜자는 최근 재단에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기부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지난해 자신들의 사연을 재단에 처음으로 조심스레 털어놓았던 부부도 올해 들어 심리적으로 꽤 안정을 찾은 모습이라고 재단 관계자는 전했다. 아버지 허씨는 “요즘 너무나 많이 벌어지는 아동 성폭력 사건 기사를 접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며 “상상하기 힘든 경험을 겪은 이웃들에게 좀 더 많은 사람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재단을 통해 밝혔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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