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부터 본격 시작된 한국의 중동외교가 반세기만에 최대 위기에 처했다. 리비아 사태에 이어 이란 금융제재를 둘러싸고 촉발된 외교적 딜레마는 대중동 외교와 대미 외교가 맞물려 생긴 것이다.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인 북한 핵문제와 이란 핵문제를 한 쌍으로 취급하는 미국의 제재 동참 요구에 반대할 명분은 사실 없다. 미국의 중동 외교정책의 두 축은 안정적 석유공급과 이스라엘의 안보인데, 이란 핵 개발은 이 두 축을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적인 것이다. 천안함 사태로 어느 때보다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이란 제재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다.
제재수위 조절 실리외교를
미 오바마 정부는 10월 초로 예상되던 포괄적 이란 제재법 시행세칙을 16일 발표했다. 당초 일정을 한 달 반이나 앞당긴 것이다. 미국이 서둘러 시행세칙을 발표한 것은 시간을 끌며 제재에 미온적인 국가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가 크다. 시행세칙을 보고 독자 제재안을 마련하겠다던 우리 정부에도 큰 부담이다. 미국의 동참 압박과 이란의 보복 경고 사이에서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묘안을 고민하던 정부로서는 다급해졌다. 우리 안보의 대미 의존도로 볼 때, 미국의 제재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어렵다. 고육지책으로 어떻게든 자체 제재방안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우리의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여 미국의 이란 제재법 시행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한편, 중동과 이란에 대한 경제적ㆍ문화적 접근과 상호이해를 증진시켜 나가는 투트랙의 실리외교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요청대로 안보리 결의 1929호를 넘어서는 자발적 독자 제재를 가하면, 이란과의 교역 중단과 같은 경제적 역풍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 대가까지 치르게 될 것이다. 자칫 중동을 포함한 56개 이슬람 국가 전체에 '한국은 이슬람 형제국가를 제재한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껏 공들여 쌓아온 우호와 신뢰에 금이 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이란 제재는 단순히 이란과의 경제관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동과 이슬람 세계 전체와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을 미국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유럽연합(EU) 등과 같이 강력한 독자 제재에 나설 상황이 아니고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다. 정부는 이란 국영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은 핵개발과 관련된 자금줄이 아니고,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가 보이지 않는 실제적인 자금원이라는 사실을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설득시켜야 한다. 미국은 멜라트 은행지점 폐쇄만으로 이란 핵 프로그램을 중지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형식상 안보리 결의 1929호는 따르되, 포괄적 이란 제재법은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이런 국제 공조의 차질을 해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 외교력 시험대 올라
세계 각국이 저마다 국익을 다투는 국제역학 관계 속에서 우리의 매우 어려운 입장을 미국 측에 충분히 인지시켜야 한다. 안보리 결의에 이어 미국의 포괄적 이란 제재법이 시행될 경우에 야기될 충격의 강도를 완화할 수 있도록, 독자적 제재의 수위를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란 제재 수위를 지금보다 높이기보다는 미국과 물밑 협상을 통해 제재 수위를 낮추는 것이 국익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력이 어려운 시험대에 올랐다.
장병옥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 ·중동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