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영욕의 한일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행사를 연다. ‘1910년 한국 강제병합, 그 역사와 과제’를 주제로 여는 국제학술회의와 ‘한일 강제병합 100년 조약 자료 전시회’ 등이다. 정재정 이사장은 “한일 근현대사 100년을 다양한 각도에서 넓고 깊게 재조명함으로써 한일 간의 역사갈등을 극복하고 역사화해를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4~26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미국, 독일 등 6개국 33명의 역사학자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학술행사. 식민지배의 실체적 진실을 사상사적으로 접근했던 1세대 학자들뿐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일상을 미시사적으로 연구하는 2세대 학자들까지 망라한 것이 특징이다.
참가 학자들 중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한일 근현대사 연구의 1세대라면, 주진오 상명대 교수, 마쓰다 도시히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조교수 등은 2세대 학자로 꼽힌다. 학술회의는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 과정’ ‘동아시아 각국의 일본 식민주의’ ‘동아시아의 미래’ 3가지 주제로 진행된다.
한국 강제병합조약 체결의 절차적 무효성을 밝히는 데 천착해온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 회의에서 일본에 의한 고종 황제 독살설을 주장한다. 고종을 강제퇴위시킨 일본의 식민통치세력은 병합 후에도 고종을 해외 독립세력을 직접 양성한 배후세력으로 주시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시각이다.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수기와 1919년 고종 서거 당시 일본 궁내청 관리였던 구라토미 유자부로의 수기를 근거로 고종 독살설을 제기하는 이 교수는 “일본이 이웃나라의 왕과 왕비를 살해하면서까지 (제국주의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문제, 광기의 역사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며 “엄연한 역사의 진실은 (일본인들의) 자성으로밖에 치유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샤코지 킨히테 오사카경제법과대 교수는 일본인들이 한일 강제병합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병합으로 상징되는 식민주의를 ‘반평화적 범죄’로 인식하는 것이 한일 강제병합의 21세기적 교훈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식민지 시기 일본이) 조선인을 일본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비법률적으로 조선인을 일본의 2급 시민으로 간주했던 이중적 잣대는 세계화 과정에서도 다시 나타나고 있는 식민주의적 이중성”이라며 “식민주의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모든 종류의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및 기타 관련 불관용을 저지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제의 ‘황국신민의 맹세’ 보급과정 등을 분석해 1930~40년대 식민지배의 실상을 고찰한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교수의 발표, 식민체제와 대만인들의 관계를 ‘군중’의 관점에서 분석한 리청지 대만성공대 교수의 발표도 주목할 만하다.
20~27일 국회도서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한일 강제병합 조약 자료 전시회에서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에 이르기까지 양국이 체결한 조약 관련 자료 74점을 볼 수 있다. 최근 공개된, 한일강제병합조약 체결에 관한 일본 천황의 조서 원문과 서명이 빠진 순종의 조칙문을 나란히 전시하는 등 양국의 자료를 병행 전시함으로써 일제의 한국 국권 침탈과정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보여준다.
한편 이밖에도 한일강제병합조약 체결(22일)과 공포(29일)일을 맞아 학계의 다양한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근현대사학회는 21일 동국대 학림관에서 1910년 한일 강제병합부터 2000년 남북정상회담까지 10대 사건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성격을 조명하는 ‘국치 100년 학술회의’를 연다.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는 27~28일 성균관대 조병두홀에서 ‘한일 과거사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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