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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엘 시스테마'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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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엘 시스테마'를 보며

입력
2010.08.1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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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오케스트라'라는 부제가 붙은 영화 가 상영되고 있다. 피가 튀기는 살인ㆍ공포영화가 판치는 한여름에 대중성이 약한 이런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게 놀랍다. 는 남미의 '작은 베네치아'베네수엘라공화국에서 일어난 음악의 기적을 알려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국가 지원을 받는 음악재단 엘 시스테마(The System)가 극빈층 청소년들을 구하고 마약ㆍ살인 범죄로 얼룩진 베네수엘라 사회를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베네수엘라의 멋진 음악교육

경제학자이며 피아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71)는 빈곤과 폭력,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을 돕는 유일한 방법은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신념에서 1975년, 전과자를 포함한 빈민가 아이들 11명을 모아 관현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독주가 아닌 협주를 가르친 것은 음악을 통해 단결과 협동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단원은 30만 명을 넘는다. 나중에 문화부장관이 된 아브레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엘 시스테마는 단순한 음악교육 이상의 사회개혁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이 운동은 베네수엘라를 세계에 알리는 국가브랜드로 정착됐다. 베를린 필하모니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보다 음악계에서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대표적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지난해 겨우 28세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이 됐다. 17세 때 베를린 필에 최연소 입단한 더블 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즈도 엘 시스테마 출신이다.

그 나라의 아이들은 총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며칠 전에도 축구선수가 경기 중 누가 쏜지 모르는 총에 맞는 사고가 일어났다. 최근 뉴스위크가 교육과 건강, 삶의 질, 경제경쟁력, 정치적 환경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 '베스트 국가'100개 순위에서 베네수엘라는 겨우 71위로 꼽혔다.

그러면 베스트국가 15위인 우리나라는 음악과 예술교육에서 베네수엘라보다 월등하게 낫고 훌륭한가? 예술정책의 입안이나 집행에서 좌우의 대립과 자리 싸움이 심하고, 정치와 행정에 예술이 예속돼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현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나라보다 우리가 나을 게 없어 보인다. 음악을 통한 사회개혁에 신명이 나서 헌신하는 사람들, "죽으면 쉴 시간이 충분하다"며 휴일도 없이 일하는 아브레우 같은 열성이 부럽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재능과 열정을 바탕으로 꽃 피는 것이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이른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간섭이나 간여도 하지 않으려면 뭐 하러 돈을 대주느냐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6ㆍ2지방선거 이후 중앙정치와 지방정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마찰이 심하다. 그런 마찰과 갈등은 지방정부 내부의 예술행정에 직ㆍ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예술단체장이 바뀌는 것도 중앙정부와 똑 같다. 나이가 많다고 공연시설장을 내보내더니 그 사람보다 나이가 더 많은 이를 후임으로 임명한다. 알고 보면 자치단체장의 사돈의 팔촌이든 뭐든 되는 사람이다. 산하단체는 자치단체장이 쓰고 싶은 사람을 임명할 수 있게 별정직을 늘린 기구조정안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지금 우리 지자체 예술행정은

어느 자치단체의 공연기관은 선거 부정으로 수감된 단체장을 감옥으로 찾아 다니며 결재를 받느라 바쁘다. 그런데 그가 최근 1심에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형량을 선고 받았으니 앞으로 사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한 자치단체장은 취임하자마자 제야음악회와 신년음악회의 통폐합을 지시했다. 비슷한 걸 뭐하러 두 번씩 하느냐는 지적인데, 평소 예술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어서 다른 것들도 예산만을 잣대로 손을 댈지 모른다고 한다.

엘 시스테마를 보며 예술의 힘을 절감하다가 우리의 상황을 보며 예술인들의 어려움과 무기력에 한탄을 하게 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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