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를 바꾸면 용산역세권개발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사업비 조달 난항에 주주간 갈등까지 겹쳐 좌초위기를 맞고 있는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이 ‘선수 교체’ 카드를 통한 새 판짜기에 시동을 걸었다.
코레일이 사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사업관리위탁사인 용산역세권개발㈜의 주관사, 즉 메인시공사인 삼성물산을 빼고 새로운 투자자와 손을 잡겠다는 최후 통첩을 날림에 따라,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자금조달의 최대 난관인 지급보증에 반대해온 건설사 대표인 삼성물산을 뺌으로써 사업 추진의 물꼬를 트겠다는 코레일의 복안이다.
그러나 이사회 결의, 경우에 따라서는 주주총회까지 통과해야 하는 데다, 침체된 부동산 경기 여건에 비추어 제3의 투자자를 끌어들이기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코레일의 계산
코레일이 꺼내든 사업자 교체 카드는 ‘안되면 돌아서라도 간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지만, 사실상 메인 사업자를 바꾸는데 있기 보다는 삼성측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용 카드라는 분석이다.
사업자를 바꾸려면 시행사인 드림허브㈜의 이사회 의결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코레일은 이사회 구성원 10명 중 3명이 삼성측 인사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다. 23일 열릴 이사회에서 사업자 교체 안건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5분의4(8명) 이상 표를 얻어야 하는데, 이사회 구성상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사회에서 안되면 특별주주총회를 소집해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실현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아울러 코레일이 20일로 예정된 사업협약 해지 통보를 유보한다고 덧붙인 대목도 여전히 삼성과의 사업구도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교체선수는 누구?
코레일은 삼성물산을 대신할 제3의 투자자들과 물밑 접촉이 있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사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거론중인 기업으로는 2006년 사업자 공모시 탈락했던 대형 건설사들을 비롯해, L사 등 정보통신(IT) 업체 등도 사업참여에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침체된 부동산 시장이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데다, 1조원에 육박하는 지급보증을 나눠 서야 하는 부담 등은 새로운 참여자를 맞이 하기에는 부담스런 조건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던 입찰 공모 당시만 하더라도 수주를 못해 안달이었지만 지금은 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며 “보다 보수적으로 사업성을 검토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발을 담그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은 삼성에?
용산역세권개발 프로젝트가 원래 멤버로 재개될지, 아니면 새 판 짜기로 갈지는 사실상 삼성물산에 달렸다. 다음 달 17일까지 128억원의 토지대금 관련 이자를 내지 못하면 사실상 이 사업은 디폴트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그전에 삼성 측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에 따라서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 사업의 운명이 판가름 날 전망이다.
현재까지 삼성물산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급보증에 응하든 아니면 나가든 선택하라는 코레일측의 요구에 대해 둘 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지금 같은 부동산상황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지급보증을 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사업에서 무작정 손을 뗀다는 것은 공신력 면에서도 선택하기 힘든 카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상호협의로 풀어야 하는데 코레일이 일방적인 의견을 발표해 아쉽다”며 “23일 열릴 이사회에서 결정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레일이 삼성 배제 카드를 꺼내 들면서 동시에 사업계약 해지는 유보키로 한 것은 20일로 예정됐던 계약해지를 유보하기 위한 명분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드림허브 관계자는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근본적으로 건설사가 지급보증을 서고 안 서고의 문제가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시장침체, 금융경색 등이 원인”이라며 “코레일과 삼성물산 모두 소모적인 갈등을 끝내고 서로가 양보하고 만족하는 중재안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공공개입 이뤄지나
코레일이 서울시에 대해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서울시의 개입할 지 여부도 관심사다. 특히 서울시는 SH공사를 통해 이 사업에 4.9%의 지분으로 참여하고 있는데다, 서부이촌동 일대 부지를 소유하고 있어 사업재개를 위해 어떻게든 중재 역할에 나서줘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당사자들이 정확하게 사업을 검토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한발 빼는 모습. 하지만 서부이촌동 (용산역세권개발사업) 동의자 협의회 주민들은 “서부이촌동 지역을 용산역세권개발에 강제 편입시킨 책임이 서울시에 있는 만큼 이제와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며 “용적률 상향 등 책임 있는 개선 대책을 강구하라”고 주장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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