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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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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에

입력
2010.08.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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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호박꽃이 피어 속이 노란 호박을 만든다. 하얀 박꽃이 피어 속이 하얀 박을 만든다. 나는 꽃 피운 색깔대로 속살이 익어가는 자연의 착한 순응을 호박과 박을 통해 배웠다. 꽃 색깔 따라 속살이 익는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뜻을 좇아간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에 순응하는 것일수록 그 맛 또한 좋은 법이다.

호박은 어린 애호박부터 좋은 반찬이 된다. 애호박으로 전을 하고 나물을 해먹는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갈치를 넣어 조림으로 내놓는다. 늙은 호박은 호박떡을 해먹고 호박죽을 끓여먹는다. 참박이라 부르는 박은 하얀 속살로 나물을 해먹고 조개나 쇠고기를 넣어 탕으로 끓여 먹는다.

영양의 보고인 박고지를 만들어 먹는다. 은현리는 호박과 박이 많아 늘 둥글둥글하고 풍성하다. 호박을 심어둔 텃밭은 지금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다. 곳곳에 황금호박이 숨어 기다린다. 지붕 위에는 둥근 박이 얌전하게 앉아 있다. 박꽃이 피는 달밤엔 하늘의 달과 지붕 위의 달은 한 배에서 나온 오누이인 양 정답게 닮았다.

무릇 열매는 둥글다. 열매가 둥근 것은 세상이 둥글다는 뜻, 열매에 둥근 세상 모나지 않게 둥글게 살라는 자연의 가르침이 푸짐하게 들어있다. 둥글게 살면 배부르고 넉넉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이라 했다. '돌고 돌며' 호박처럼 박처럼 사는 일도 행복한 삶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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