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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의료를 달린다] 서울아산병원 <8> 맞춤수술로 생존율 높이는‘대장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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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의료를 달린다] 서울아산병원 <8> 맞춤수술로 생존율 높이는‘대장암센터’

입력
2010.08.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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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기(67)씨는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15년 전 산업재해를 당해 퇴사하고 지금은 건축사업을 하고 있다. 산재환자라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온 그는 올해는 그 동안 미뤄온 대장암 내시경을 받았다. 대변이 가늘어진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대장암 내시경은 건강검진 항목에서 빠져 있는데다가 위 내시경과는 달리 장을 비워야 하는 등 준비나 절차가 번거로워 그 동안 매번 건너뛴 것이다.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 권씨는 3기 대장암 선고를 받고 복강경으로 대장암 수술을 받기로 했다.

혈변이 생기면 대장암 내시경 받아야

대장암은 위암에 이어 우리나라 암 발생률 2위다. 발생 증가율은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게다가 위암은 전체 환자 중 절반 가량이 조기 발견되지만, 대장암은 조기 발견율이 25% 내외밖에 안 된다. 대장 내시경 검사가 번거롭고 불편하다는 생각도 조기 발견이 제대로 되지 않는 요인이다.

대장암은 대부분 직장에 생기며, 이 경우 혈변이 나타난다. 대변 굵기가 가늘어지기도 한다. 암 덩어리가 크면 아예 대변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치질 때문에 혈변이 생길 수 있지만 암으로 인한 혈변과 양상이 다르다. 유창식 서울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치질 혈변과 암 혈변 모두 선홍색이라 피의 색깔로는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치질로 인한 혈변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반면 직장암으로 인한 혈변을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복강경 대장암 수술

지난 5일 오전 9시30분. 서울아산병원 E로젯 7번 수술실. 3명의 외과 의사 외에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를 빙 둘러싸고 있다. 권씨 배에는 5~10㎜ 정도의 구멍 5개가 뚫려 있고, 그 안에는 복강경 기구가 삽입돼 있다. 이번 수술에서 의료진은 항문에서 16㎝ 위에 있는 직장과 S결장 경계 부위에 생긴 암 덩어리를 제거할 것이다.

수술실 천장에 있는 밝은 조명이 꺼지자 집도의인 유창식 교수가 앞에 설치된 대형 LCD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모니터에는 권씨의 배 속과 대장 부위가 확대돼 선명하게 보인다. 복강경 기구 중 하나에 장착된 고성능 불빛과 카메라가 환자의 뱃속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이다.

유 교수가 가위처럼 생긴 손잡이와 긴 막대로 연결된 복강경 기구를 양손에 쥐었다. 기구의 한쪽 끝에는 마치 빨래집게처럼 생긴 집게가 달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고리 모양의 기구가 붙어 있다.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유 교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막대의 끝에 달려 있는 집게와 고리는 S결장(S자 형태로 생김)-대장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면서 골반의 안쪽 벽 S결장 사이에 붙어 있는 지방 조직을 태우고, 골반 내벽과 S결장을 분리했다. 마치 가열된 쇠막대기를 스트로폼에 갖다 대면 움푹 파이는 것과 같다. 이것은 암이 생긴 아랫부분, 즉 직장의 일부와 S결장, 좌측 대장의 일부를 잘라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유 교수는 “항문 위에 직장이 있고 그 위에 S결장, 좌측결장, 횡행결장, 우측결장이 있는데 이 환자는 직장과 S결장 사이, 즉 항문에서 16㎝ 위에 5㎝ 정도 크기의 암이 생겼다”며, “복강경 수술로 암을 제거해도 충분한 위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 교수는 “항문에서 10㎝ 위를 자르고 암 덩어리가 있는 S결장을 포함해 모두 25㎝ 정도를 잘라낼 것”이라고 했다. S결장 주위에 퍼져 있는 림프절이 암세포를 다른 곳을 옮기는 주요 통로라 함께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장암 전문의들은 암이 생긴 환자의 변화된 배변 습관만 듣고서도 암의 발생 위치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좌우측 대장과 횡행결장, S결장, 직장의 기능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소작기(燒灼機)와 초음파 가위를 사용해 나무뿌리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배 속 혈관을 헤집으면서도 단 한 방울의 피도 내지 않은 채 분리를 마쳤다. 이제 잘라내야 할 부위를 절단할 차례다. 대장암 복강경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번에도 역시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이제 암이 포함된 절개 부위를 배 밖으로 끄집어내고, 직장과 좌측 대장을 이어 붙이면 된다. 이어 붙이는 과정이 마치 다리미로 눌러 붙이는 것 같았다. 이것으로 대장암 수술은 모두 끝났다. 수술을 마친 유 교수는 “복강경 수술의 발전은 과학기술의 진화와 함께 해왔다”며 “발전의 혜택은 집도의와 환자가 함께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간 이식ㆍ담낭염까지도 복강경 수술로

복강경 수술은 복부에 아주 조그마한 3~4개의 구멍(지름 5~10㎜)을 만들어 가스를 주입한 뒤, 정밀 카메라가 달린 가는 관을 삽입해 모니터를 통해 복강 안을 정밀하게 보면서 병변을 확인하고 수술기구를 넣어 이를 제거하는 수술법이다.

1987년 세계 최초로 복강경을 이용한 담낭 절제술이 시행된 이후, 복강경 수술 기술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왔다. 복강경 수술이 도입된 초기에는 적용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수술장비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재는 개복 수술이 필요한 거의 모든 질환에 적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개복 수술이 필수로 여겨지던 담낭염까지 복강경 수술로 대체됐다. 담도와 위장 식도 대장 직장 소장 비장 부신 등 복강 내에 있는 장기의 수술을 비롯해 산부인과와 신경외과, 비뇨기과 등에서도 복강경 수술이 시도되고 있다.

이제 복강경 수술은 고도의 수술 기술을 요하는 간 이식 분야에까지 활용돼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간 이식 공여자 수술 시 복강경 수술을 하면 금식기간은 평균 2.7일에서 2.1일로, 입원기간은 9.8일에서 6.8일로 크게 줄일 수 있다. 김기훈 서울아산병원 간이식외과 교수는 지금까지 간 이식 수술 16건을 포함해 간 내 담석, 간암수술 등 총 126건을 복강경 수술로 진행했다.

물론 복강경 수술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직장의 아래 부분에 생긴 암이나 임파선을 광범위하게 절제해야 하는 경우에는 복강경 수술이 더 좋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골반의 좁은 공간에서 복강경 기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직장암을 복강경으로 수술할지 여부를 정하기 위한 광범위한 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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