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알짜배기 자회사 지분 매각경위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한국일보 17일자 1, 6면), 산업은행이 사실상 이를 묵인하거나 동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31.3%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관리감독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책임론도 불거지는 상황이다.
17일 기업 공시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2008년 8월 29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설계용역 전문 자회사인 D사의 주식 355만주(지분율 25%)를 조선기자재 업체인 K사에 매도하는 안을 참석이사 7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른 대우조선해양의 매각대금은 133억5,510만원(1주당 3,762원)에 불과했으나, K사로 넘어간 해당 주식들의 순자산가액은 같은 해 말 157억391만원, 이듬해 말에는 216억8,697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대우조선해양으로선 결과적으로 손해를, K사로선 엄청난 이득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적 판단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주주로서 산업은행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거나 방조한 것은 아니냐는 점이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자행 이사 출신 허모씨를 대우조선해양 이사회에 사외이사로 참여시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주주로서뿐 아니라 자행 출신 인사가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방식으로 여전히 직ㆍ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허씨가 2009년 3월 임기 1년을 남기고 중도 퇴임한 뒤에도, 김유훈 전 산은 재무관리본부장(부행장급)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담당 부사장으로 영입되는 등 산업은행은 대주주로서 계속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에 참여해왔다. D사의 공시자료에도 대우조선해양이 '지배회사'로, 산업은행이 '최상위 지배회사'로 기재돼 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워크아웃을 졸업하면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대주주라 하더라도) 은행이 경영사항에 나서서 간섭할 수 없다"며 "물론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기는 하지만, 이외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컨트롤'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2001년 8월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전까지 대우조선해양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맺은 업무협약(MOU)에 따라 주요 업무 추진 때 산업은행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워크아웃 졸업과 함께 MOU가 효력을 상실해 산업은행도 대우조선해양의 의사결정 과정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 등에서는 "산업은행의 사전 승인 없이 대우조선해양이 단독으로 D사의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는 것은 상식 밖이고, 정말 간여하지 않았다면 산업은행의 관리감독이 부실했다는 증거"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산업은행에 질의서를 보내 이 부분을 물었으나,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으며 대우조선해양 자회사나 손자회사의 매각은 산업은행의 승인 또는 인가사항이 아니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전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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