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국내 연극계의, 이를테면 야인이다. 그로부터 듣는 발언의 수위는 범람 직전의 한강이었다. 날선 언어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소이탄 같았지만, 생각건대 그것은 9년 만에 공개한 자신의 회심의 작품에 대해 지난 주 ‘경계의 즐거움’에서 무딘 질문을 던진 기자에 대한 질책의 형식이기도 했다.
극작ㆍ연출가 김상수(52)란 존재는 낯설고, 더러 21세기 초입의 한국을 구성하고 있는 풍경과 버성긴다. 15일 막을 내린 그의 연출작 ‘화사첩’(극단 김금지)은 19세기 외세의 출현에 맞닥뜨린 동양의 한 가상 국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강대국에 요리되는 약소국의 현실을 그린 무대였다. “포크레인, 전시작전통제권 등 오늘의 현실도 언급됐지만 무대를 관통하는 것은 공동체적 가치, 국가의 의미, 국가의 작동이란 문제였어요.” 그의 말은 기자의 ‘화사첩’ 리뷰가 외세의 침탈 앞에 분열하고, 결국식민 통치가 내면화돼 가는 상황을 그린 무대의 골자를 비켜갔다는 지적이다. 거기에는 그 무대가 빛을 보기까지의 상황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데 대한 서운함도 배어 있었다. “지원금도 없고, 배우들도 노 개런티였어요.” 희곡 쓰는 데 걸린 7일을 빼면 실제 작품 연습기간은 한 달 남짓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이 현재적 문제에 깊이 관여하면서도 ‘조금 더’ 들어가지 않는 무대의 태도가 기자는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김씨는 동시대 관객과의 소통보다, 자신의 창작 원칙을 앞에 놓았다. “현실 풍자의 무대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한 예가 극의 소재로 외국어 교육 문제를 넣을지를 두고 그의 흉중에 오고간 문제였다고 한다. “‘아륀지’ 문제처럼 현정권에서 벌어진 모습을 어전회의 대목을 빌어 상세하게 그려볼까도 했지만 전체 균형을 위해 뺐어요.” 섣부른 풍자와 야유가 판치는 대학로의 무대 상황과는 격을 두고 싶었다는 그의 해명에는 긴 세월 동안 연극을 붙들고 있는 자부심이 비쳤다.
지금 그는 파리와 베를린의 작업실을 오가며 무대 및 추상사진 작업을 하고 있지만 한국은 언제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반민특위를 소재로 한 ‘191913’, 한국전쟁을 냉정하게 묘사한 ‘포로 교환’, 역대 대통령을 풍자한 ‘이박전노금각’ 등 그의 문제의식은 한시도 한국을 떠난 적이 없었다. 2001~2003년에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연극활동 덕에 한류의 원조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는 연극을 세상의 거울이라기보다, 시대에 대한 발언이라 생각합니다. 연극을 왜 하느냐고요? 연극이 완전히 썩고 죽었구나 하는 위기감 때문이죠. 사회의식이 지금처럼 긴요한 적은 없는데….” 그는 인터넷 뉴스 포털 프레시안에 기명 칼럼을 쓰고 있고, 예술에서 사회, 정치 문제까지 사유의 결과를 자신의 웹사이트(www.kimsangsoo.com)에 올리고 있다.
그는 60여 편의 희곡을 축적해 두고 있다고 했다. “일단 독일로 돌아가서, 불신과 익명성이 판치는 이 시대를 소재로 한 2인극을 준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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