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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1부> (9) 친정가정 상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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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1부> (9) 친정가정 상봉기

입력
2010.08.1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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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이지 뭐. 지금 가면 말도 못하고 맛있는 것도 못 먹고 할 텐데….”

“나는 5년 동안 그랬는걸. 당신은 잠시만 겪으면 되잖아.”

7일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하노이국제공항 도착을 눈앞에 둔 베트남항공937기 기내에서 남편 김순식(44)씨와 부인 호앙 띠뚜란(28)씨는 마냥 들떠 있었다.

전남 영암군에서 농사를 짓는 노총각이었던 김씨는 결혼 중개 업소를 통해 베트남 현지에서 호앙씨를 만나 혼례를 올린 뒤 한국으로 왔다. 그러곤 어느새 5년이 휙 흘렀지만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여태껏 처가 방문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호앙씨의 셋째 출산을 6개월여 앞두고서야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하고 삼성생명이 후원한 다문화 가정 친정 방문 프로그램 ‘2010날자’를 통해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 사이 가족의 일원이 된 두 살, 세 살배기 아들과 뱃속의 아이까지 함께한 행복한 모국 방문 길이었다.

“친정에 오니 남편이 변했어요”

30여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7~14일 베트남 하노이시와 호치민시에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수확은 남편의 변화다. 대부분의 남편은 현지 생활을 답답해 하면서도 한국에서는 항상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부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방문 2일째인 8일 하이퐁(하노이시 동쪽 3시간 거리)의 처가에서 만난 김씨는 오는 길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말은 잘 통하지 않았다. 지인들은 멀리 있다. 김씨는 “아내가 이렇게 밝은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며 “언어가 안 돼 답답하지만 여기 있어 보니 아내가 늘 느끼는 외로움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부인이 현지 가정과 친지로부터 사랑받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도 수확이다. 출산 이후 혈소판감소증을 앓고 있는 팜 티신(36)씨의 하이퐁 친정을 세 살 된 아들과 방문한 강진구(53)씨도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서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가슴이 찡했다”며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변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자신과 어머니를 눈물을 흘리며 반기는 외가 식구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집안의 대장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 나라에서는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재단의 한 활동가는 “친정 방문은 자녀들에게 한국에서는 풀이 죽어 있거나 말수가 적은 어머니가 가정과 사회에서 사랑받고 인정받는 진취적 여성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577억 들이는 다문화 지원책 효과 있나

다문화 가정의 친정 방문은 이처럼 남편을 180도 바꿔 놓는다. 결혼이주 여성이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을 역지사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다문화 지원책도 사실 이처럼 한국 사회와 결혼이주 여성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1월 집계한 ‘다문화 가정 관련 지원 부처 예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8개 부처에서 총 577억 2,600만원의 예산을 다문화 가정 지원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한국어 교육, 다문화센터 지원 등 한국 사회와 한국 문화에 대한 동화 정책에 치우친 것이다. 복지부의 다문화가정아동청소년 언어발달지원 사업만 해도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한국어를 습득하는 데만 관심을 둘 뿐 자녀들의 이중언어 교육(Bilingual Education)에는 별 관심이 없다. 고용부의 외국인고용관리사업 등 여타의 다문화 가정 지원 사업도 결혼이주 여성이나 이주노동자를 한국 산업의 노동력으로 빨리 흡수하려는 내용이다.

“동화 정책에서 상호 적응으로 가야”

다수의 결혼이주 여성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부터 시작된 가정불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많은 다문화 가정의 남편들은 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저소득층의 남편들의 몰이해와 차별은 도를 넘는다. 더구나 저소득층 남편들은 처가를 방문해 부인이 한국에서 겪는 처지를 대리 체험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남편이 이 정도니 한국 사회는 더 말할 것 없다.

따라서 결혼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한국 사회에 동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남편과 한국 사회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의 다문화 지원책이 대부분 결혼이주 여성을 한국 사회와 문화에 적응시키려는 동화 정책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심화하고 있다”며 “다문화 사회는 일방 적응보다는 상호 이해와 적응의 과정을 거쳐 공존의 단계로 나아가야 안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이어 “부인이나 어머니의 문화를 음식과 언어에서부터 이해하는 것은 처가나 외가와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결국 부부 간, 모자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하노이=김청환기자 chk@hk.co.kr

■ 강경희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

“다문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따라서 동화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라고 할 수 없어요.”

다문화 가정 친정 방문 프로그램 ‘2010날자’를 통해 올해만 30여개 가정에서 102명이 베트남을 방문토록 한 강경희(사진)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의 말이다. 2007년부터 매년 베트남 필리핀 몽골 태국 등에서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강 총장은 8일 베트남 현지 친정 방문을 인솔하는 길에서 한국 사회의 다문화 인식과 정부 지원책의 한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말로는 다문화지만 내용은 동화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다문화인이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지방자치단체 행사는 한국 사회의 저급한 다문화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TV는 한국인보다 김치를 더 잘 만들고 시장 볼 돈을 아끼는 알뜰한 주부가 됐다는 이야기를 이상적 결혼이주 여성상으로 제시한다. 또 한복 입기, 식혜 담그기, 제사상 차리기는 지자체가 여는 다문화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이다.

강 총장은 “빨간색은 빨개서 예쁘고 노란색은 노래서 예쁜 건 데 주황색이 예쁘다고 하는 게 문제”라며 “그들을 우리 색으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고 당부했다.

그는 다문화인을 교육하고 훈련시켜서 한국에 맞게 바꾸려는 것 역시 여러 문제를 파생시킨다고 본다. 실제로 정부의 다문화 지원책 대부분이 어학, 노동, 문화 교육 등 한국 사회에 결혼이주 여성을 동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다문화 가정의 불화는 날로 늘어 사회 문제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이제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2010날자’ 프로그램이 친정 방문뿐 아니라 전체 가족 모임, 사후 모임 등으로 진행되는 이유다.

보람은 크지만 항상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강 총장은 이날도 한 참가 여성의 베트남 친정을 방문했다. 며칠만 더 있게 해 달라는 요구에 “노(NO)”라고 말해 놓고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강 총장은 “한국에서 ‘닭장 생활하듯 우울하게 지낸다’던 결혼이주 여성이 현지에서 너무도 밝은 모습을 보일 때가 가장 보람 있어요”라며 “재단의 슬로건이 ‘딸들에게 희망을’인데 이 땅의 딸이자 어머니인 그들에게 친정 방문보다 더한 희망이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 지원 사업이 불법 해외 결혼 중개를 더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강 총장은 “결혼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과정 자체가 이미 폭력적”며 “한국 사회가 그들을 노예로 산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친정 방문의 기회 등)은 별개의 책임 이행이라고 봅니다”고 했다.

하노이=김청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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