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종적을 감췄던 오현섭(60) 전 여수시장이 도피 60일 만인 18일 자수했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은 이날 오후 3시15분께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변호인과 함께 자진 출석했다. 오 전 시장은 경찰에 나오면서 "여수시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사실대로 다 규명하고 시민들에게 사죄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 전 시장은 여수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4월 시에서 발주한 야간경관조명 공사를 특정업체에 주는 대가로 2억6,000여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수사를 받아왔다. 오 전 시장은 뇌물을 대신 받아 관리한 전 여수시청 간부 김모(59·여·구속)씨에게 해외 도피를 지시한 혐의(범인도피)도 받고 있다. 김씨는 받은 돈 가운데 1억원을 지난 4월 중국으로 도피한 오 전 시장의 측근 주모(67)씨에게 전달했고, 주씨는 서모(60)씨 등 여수시의원 10여명에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전달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앞서 6월 15일 김씨를 불러 조사한 뒤 사흘 만에 오 전 시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지만 오 전 시장은 휴가를 내고 돌연 잠적했다. 오 전 시장은 도피 직후 광주의 지인 이모(57)씨 집에서 5일간 은신하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전남 화순 산 속의 김모(59)씨 집으로 거처를 옮겨 2주간 숨어 지낸 것으로 드러났다. 오 전 시장을 숨겨준 이들 2명은 범인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달 9일에는 강릉시 버스터미널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혼자 버스표를 사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경찰은 측근 주씨를 붙잡아 돈을 받은 시의원 10여명의 명단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만약 뇌물 수수가 사실로 드러나면 여수시의회는 무더기 재선거 사태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뇌물을 준 업체가 목포, 해남, 여수 등 광주·전남지역 자치단체의 사업을 30여건이나 수주했고, 지난 5월에는 해남군수가 이 업체로부터 1억9,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만큼 다른 지자체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이 '괴롭다. 18일 자진 출석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16일 특수수사과로 보내왔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은 편지에서 "1998년 광주시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으면서 주식 정보를 입수해 2억5,000만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혐의로 구속될 당시가 떠올라 소름이 끼쳤고 무서웠다.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을 듣고 잠적을 결심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조사를 마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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