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황궁,덕수궁
덕수궁, 즉 경운궁은 현재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위용에 가려져 있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제국(帝國)의 정궁(正宮)으로 기획된 궁궐이다.
경운궁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아관파천을 계기로 해서였다. 을미사변 직후부터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1897년 2월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곳에서 새 국가를 만들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리고 여러 준비작업을 거쳐 그 해 10월 12일 경운궁 앞 환구단에서 황제에 즉위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경운궁 건설 공사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을 때부터 시작돼 대한제국기 내내 계속됐다. 고종은 경운궁의 터를 넓히기 위해 서쪽의 중명전, 북쪽의 돈덕전과 선원전, 그리고 남?으로 많은 땅을 사들였다. 그러나 영국, 미국, 독일 공사관 등이 있어 한계가 있었다.
경운궁이 제국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서울의 중심이 광화문 앞에서 대한문 앞, 즉 지금의 서울광장으로 옮겨졌다. 고종은 경운궁 내에 중명전, 석조전 등 신식 건물을 많이 지어 위엄을 갖추려 했다. 1902년에는 정전인 중화전을 완공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13년 간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중심이었다.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이후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선황제가 머무르는 궁궐로서 위상이 높았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난 후 일제는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의 흔적을 지워갔다. 확장됐던 궁궐을 잘라내 민간에 불하하고, 덕수궁을 중앙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의 덕수궁 궁역은 대한제국 당시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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