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세를 둘러싼 핵심 논란 가운데 하나는 조세원칙 부합 여부다. 통일비용에 대한 선제적 대비 필요성은 공감한다 해도, 이것을 세금으로 거둬 쌓아두는 것이 과연 타당한 지 공방이 적지 않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선 “통일 이후나 적어도 통일이 무르익은 상황이면 모를까 당장 세금을 거두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통일세의 가장 큰 문제는 거두는 것(세입)만 있지 쓰는 것(세출)은 알 수가 없다는 점. 통일세란 기본적으로 남북 통일 이후 들어갈 각종 사회경제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인데, 현재로선 ▦언제 통일이 될 지 ▦어느 정도의 돈이 들어갈 지 등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만약 북한 및 국제정세 변화 등으로 통일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해진다면, 극단적으론 세금만 거두고 쓰지도 못할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통일이 가시화돼서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언제 통일이 될지, 비용이 얼마나 소요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불투명한 상황에 대비해 세금을 거두는 것은 조세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일세 논의의 중요한 선례가 된 독일의 ‘연대세’ 역시 동ㆍ서독 통일 이후 부과된 세금이지, 통일에 대비해 사전적으로 조성된 세금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통일세가 도입되는 경우 통일비용 추산 등이 전제가 되겠지만,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통일비용 추정치들도 어떤 가정, 어떤 전제를 하느냐에 따라서 500조원에서 5,000조원까지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통일 시점을 예측하는 것도 매우 불투명한 상황. 김형준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떤 형태든 통일세를 거두기 위해서는 미래에 얼마만큼 돈이 쓰일지에 대한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며 “아무리 정확히 예측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예측은 예측일 뿐, 이를 근거로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명확한 규모예측과 용도 등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일세 논의를 시작한다면, 목적세 신설이 됐든 기존 간접세율인상이 됐든 조세저항은 불가피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아직 통일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세금을 거두는 것은 무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통일에 대비해 재정건전성 기준을 보다 엄격히 가져간다거나, 외환보유액을 지속적으로 확충해간다거나, 아니면 차라리 남북협력기금을 확대 운영하는 방식에 주력한 뒤 향후 통일이 가시화하는 시점에 통일세 등 세금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해마다 평균 2조원 정도에 달하는 쓰고 남은 세금(세계잉여금)을 기금으로 적립해 통일 대비 자금을 축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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