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영화/ 라제기의 시네마니아/

입력
2010.08.16 12:02
0 0

영화 속 폭력과 복수보다 더 끔찍한 것은…

눈알이 발에 채이고 머리통이 통통 굴러다닌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고깃덩어리로 전락한 조각난 사람의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자니 심장판막이 오작동이라도 일으킬 듯하다.

인두겁을 쓴 악당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들 이야기라고 하나 피가 흥건한 폭력 앞에 선과 악의 구분은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복수를 다룬 영화가 다 그렇지 않냐고, 그게 바로 폭력의 미학이 아니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 속 폭력과 복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복수의 쾌감을 느끼기엔 지나치게 잔혹하다. 피로 붉게 물든 스크린의 으스스함보다는 영화에 비친 이 사회의 어두움에 더 식은땀이 난다.

형사와 특수요원, 그리고 국정원 요원. 전직이든 현직이든 주인공들은 모두 반듯한 사회 구성원이다. 법에 의한 정의 구현을 믿거나 최소한 믿는 척 해야 하는 특수한 직업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도 경찰 등 공권력에 기대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 복수를 행한다. 올해 사적 단죄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무법자’와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의 공통분모다.

또 하나의 공통점. 악당이든 선한 쪽이든 가족의 연대가 폭력으로 이어진다. ‘아저씨’의 만석 형제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악당상을 제시한다. 자신은 회칼을 휘두르고 마약을 팔아도 혈육은 범죄 세계에 끌어들이지 않는 식의 한국영화의 전통적 설정을 깨고 만석 형제는 공포의 복식조를 이룬다.

‘악마를 보았다’의 국정원 요원 수현과 예비 장인이 복수를 위해 협력하는 모습도 한국영화에선 지극히 낯선 풍경이다. 피투성이가 된 예비 장인이 수현의 손을 말 없이 꼬옥 잡으며 중단 없는 복수를 당부하는 장면은 마음을 짠하게 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폭력에 브레이크 를 걸던(또는 그런 역할을 해주리라 믿었던)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은 이제 없다.

어느 영화인은 말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낳은 이 사회의 자화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국가가 개인을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는, 정의를 찾기 힘든 시대의 불우함을 반영한 것이라고. 굳이 이데올로기적 잣대나 면밀한 사회적 분석틀을 적용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영화 속 이 사회의 암울한 징후는 가슴을 누르고도 남는다. 수현의 직장 동료가 남긴 대사는 그래서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우리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네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더욱 치열해진 비정한 현실은 영화 속 그 어떤 잔혹한 묘사보다 더 무섭고 끔찍하다.

wenders@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