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각의 결정을 거쳐 한국민의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준 점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는 총리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식민지배가 과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인들에게 참혹하게 시해된 명성황후 장례 장면을 담은 의궤를 포함한 조선왕실 도서들도 돌려주기로 했다.
한일 화해에 중요한 기반
그런데 담화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높지 않다.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주종을 이룬다. 표현 하나하나를 놓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왜 반환이 아니고 인도냐, 무라야마 담화와 큰 차이가 없지 않느냐, 강제연행과 위안부는 왜 언급되지 않았느냐 등 현미경으로 문제점을 찾으면서 일본의 진정성보다는 꼼수를 부각하려고 한다.
그것은 일본 총리도 언급했듯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 일을 우리는 절대 잊지 못한다. 35년 간 우리가 겪은 고통과 피해를 고려할 때, 100% 만족할 수 있는 사과와 보상은 존재할 수 없다. '강제성과 과오를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넘어서는 표현이 있다면 무엇일까? 합병조약의 유ㆍ무효를 따지는 것은 법리적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조약 무효와 관계없이, 이미 35년 간 식민지배가 실제로 있었던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 의미에서의 해결이다. 그것은 우선 가해자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사과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용서다. 또한 강제동원, 위안부, 문화재, 사할린 동포 등 역사적 사실 하나하나를 직시하면서 해결해 가는 일이다.
간 총리의 담화는 화해 프로세스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다. 총리 담화가 미흡하지만 그 진정성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을 두고 여전히 정부발표를 믿지 않는 일부 국민들이 있듯이, 일본사회도 다원적 민주사회인 이상, 담화에 대해 다른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 분명한 점은 담화가 대다수 일본 국민의 뜻이라는 점이다. 간 총리가 참의원 선거 패배에 따른 국내 정치적 어려움 속에서도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보인 것은 정치 생명을 건 결단이었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사과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화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가해자의 사과보다 피해자가 사과를 받아들여 용서하는 일이 더 어렵다. 실생활에서 자주 목격하는 일이지만, 사과가 부족하다, 사과하는 태도가 나쁘다 등으로 화해가 깨지고 관계가 더 악화되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화답이 없다면, 모처럼의 총리 담화는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다. 이번 모멘텀을 살리지 못하면, 한일 역사화해는 물 건너 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가 일본의 사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실질적 규명과 해결에 힘쓸 때
과거사 문제와 관련, 우리는 총론에만 강했다. 도덕적 잣대로 사죄를 요구하는데 치중했으나 실질적 피해를 규명하고 해결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전모를 밝힌 것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 것도 우리가 아닌 일본인들의 노력이었다. 현안 문제와 관련, 일본도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면서 하나하나 해결해가겠다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의 화해와 함께 각론에서 철저히 규명하고 보상 받을 건 보상 받는 야무진 접근이 필요하다. 조선왕실의궤 반환이 가능해진 것은 일본 황실 깊숙이 숨겨져 있던 존재를 발굴해낸 우리 시민사회의 노력의 결과다. 강제병합 100년에 즈음한 이명박 대통령의 8ㆍ15 경축사에는 어떠한 메시지가 담겨있을지 궁금하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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