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실비 지음ㆍ문세원 옮김
양철북 발행ㆍ503쪽ㆍ1만4,000원
1965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탄광촌 코리건. 이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년 재스퍼 존스와 제프리 루는 심각한 곤경에 처한다. 원주민 어머니는 죽고 폐인이나 다름없는 백인 아버지뿐인 외톨이 혼혈 소년 재스퍼는 숲 속 자신만의 비밀 공간에서 나무에 목이 매인 여자친구 로리의 시신을 발견한다. 부모가 베트남 출신 이민자인 제프리는 갈수록 심해지는 또래들의 폭력에 시달린다.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이 나라 군인 중 전사자가 점점 늘면서 제프리의 부모 또한 이웃들에게 봉변을 당하기 시작한다.
인종 차별에 고통받는 소년들의 처지는 암울하기 짝이 없건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예 작가 크레이그 실비(28ㆍ사진)는 심각할 것은 전혀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이들의 성장기를 들려준다. 두 소년의 친구이자 그 자신 역시 또래 중 왕따인 작중 화자 찰스 벅틴은 재기발랄한 수다로 그들이 겪는 비극의 무게를 덜어낸다. 2008년 발표된 작가의 두 번째 장편이다. 어두운 내용과 발랄한 화법이 맞부딪는, 잘 읽히면서도 농밀한 서글픔을 남기는 이 소설엔 ‘유쾌한 비극’이라는 모순형용을 부여할 만하다.
소설은 상반된 자세로 난관을 돌파하려는 재스퍼와 제프리의 분투를 찰스의 눈을 통해 번갈아 보여준다. 로리가 타살됐다고 단정한 재스퍼는 찰스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시신을 숨긴 뒤 범인을 찾아나선다. 시신유기라는 불법을 무릅쓴 그의 행동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그리고 자신을 결국 로리의 살해범으로 몰아갈 것이 뻔한 세상의 편견을 향한 이중의 분노가 서려 있다.
제프리는 인내를 택한다. 자신을 ‘베트콩’이라고 놀리는 백인 소년들의 따돌림을 묵묵히 견디며 그는 제 진가를 보여줄 때를 기다린다. 특히 출중한 크리켓 실력을 보여줄 날을 위해 지역 크리켓 팀 주변을 맴돌며 볼보이 등 궂은 일을 도맡는다. 로리의 시신을 숨겼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녀의 동생 일라이저와 연애를 하고, 부모의 불화로 고통받는 찰스의 성장통 또한 만만치 않다.
소설은 소년들의 분투가 결실을 거둔다는 식의 서사를 거부하고 끝까지 ‘동정 없는 세상’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대단원이라기보다는 또다른 절정의 도래처럼 여겨지는 소설 결말부에서 독자는 이 소년들 역시 세계와의 투쟁 속에서 놀라울 만큼 강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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