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가뜩이나 습하고 더운 여름날씨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문제로 더욱 짜증스럽다. 사태의 본질은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통합해 만든 LH의 부채 규모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2003년 20조원이던 부채가 올해 7월에는 118조원에 이르러, 7년 만에 6배로 늘어났다. 하루 이자만도 100억 원에 가깝다. 그야말로 거대한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형국이다.
무리한 국책사업과 중복투자
LH가 도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면 짜증은 더욱 커진다. 지역 균형발전을 내세운 참여정부는 주로 땅에 손대는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100만호의 국민임대주택 공급, 혁신도시, 행복도시, 무수한 산업단지와 택지 개발을 비롯해 미군기지 이전까지, 대형 국책사업들을 짧은 기간에 남발했다. 게다가 혹시 후임 정권이 손댈까 봐 토지보상 시한까지 못박는 치밀함을 보였다.
대개 낙하산으로 내려온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임원진도 부실의 공범이다. 이들은 중복투자는 물론 과도한 보상과 무리한 투자를 서슴지 않았다. 통합 과정에서 지적된 두 공사의 과당 경쟁과 중복 투자는 이미 그 시절에 불붙었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MB정부도 책임 추궁에서 빠질 수 없다. 150만호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비롯해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을 통해 LH의 부실을 부추겼다. 최근 부동산 경기의 침체는 LH의 거대한 부실을 수면 위에 떠올린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정부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없지는 않다. 거품붕괴 우려까지 있던 부동산 가격이 하향 조정되고, 적지 않은 서민들이 내 집 마련에 성공한 것은 바람직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나 보금자리주택은 이미 미분양이 속출하고 무주택 자격요건 때문에 전세금은 폭등하고 그린벨트가 크게 훼손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또한 LH의 부실화는 국가의 장기적인 주택공급에 차질을 가져 올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LH의 부실화 과정은 우리 정치와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권의 무분별한 밀어붙이기와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공기업의 행태는 오늘날 부실의 주범이다. 정확한 수요 예측조차 없이 사업을 추진하고 보상비는 너무 높고 임대료는 낮게 책정하는 등 부실로 이어질 모든 조건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LH는 현재 다양한 자구노력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본연의 업무 외에는 정리한다고 한다. 나아가 사옥을 처분하고 인력을 감축하며 채권의 추가 발행과 토지 분양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고 한다.
정부도 LH를 돕기 위해 정부 배당의 한시적 면제와 융자금의 출자전환, 원금상환의 유보, 재정지원의 확대 등을 검토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관련 기금의 부실과 국가채무의 증대로 직결되는 만큼 결론 도출에 신중해야 한다. 낙하산 임원진의 임금 및 복지 삭감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부채 리스크 집중적 관리를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이란 없다. 엇갈리는 이해가 난마처럼 얽혀있는 경제 문제는 더욱 그렇다. 결국 이미 제시된 방안들을 모아 완급을 조절하고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런 측면에서 LH와 정부는 물론 국민의 인내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의 부채는 결국 정부와 국민의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LH 사태는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비율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강변해온 정부의 주장과 통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계부채, 공기업부채, 지방부채, 국가부채로 이어지는 부채 리스크에 대한 보다 집중적인 관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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