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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2만3000원 기초생활자, 절망의 가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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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2만3000원 기초생활자, 절망의 가계부

입력
2010.08.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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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서울 영등포구 J고시원에 사는 김모(43)씨의 통장에 42만3,000원이 찍혔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그에게 1인 가구 기준의 생계비 한 달치가 지급되는 날이었다. 주머니 안에 꼬깃꼬깃 접힌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 전 재산이던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 푸념으로 바뀌었다. 고시원 임대료(20만원) 식비(약 10만원) 게다가 지난 달 친구에게 빌린 돈(10만원)까지 갚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김씨는 "오늘 받은 돈, 내일이면 한 푼도 없다. 앞으로 한 달 또 구걸하며 겨우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악성관절염을 앓는 그가 구걸 외에 폐지수집 등으로 한 달간 버는 돈은 8만원이다.

7월 한 달 절망의 가계부를 작성한 이들이 있다. 그들의 가계부는 재테크의 일환 혹은 계획적인 소비와 지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었다.

기초생활권리행동 등 2011민중생활보장위원회(민보위)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초생활수급가구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김씨를 비롯해 서울과 대구 등 전국의 기초생활보장수급가구 15곳이 대상이었다. 이들은 지난달 1일부터 31일까지 가계부에 모든 수입과 지출을 기록했다.

대부분 가구의 가계부는 마이너스였다. 김선미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책임간사는 "생계비가 떨어지면 폐지를 줍거나 구걸을 하는 식으로 충당했고, 돈을 빌려 간신히 버티는 곳도 많았다. 빈곤의 악순환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배(수입)보다 배꼽(지출)이 큰 이유는 주거비 때문이었다. 쪽방과 고시원(7가구), 영구임대주택(3가구) 등 대부분이 무보증 월세로 살고 있었지만 수입의 18~43%를 써야 했다. 현재 서울시내 쪽방과 고시원의 한 달 임대료는 평균 16만~20만원이다.

자녀가 있는 집은 역시 교육비가 부담이었다. 설모(35)씨는 "두 애를 위해 쓰는 돈이 고작해야 월 10만원이 넘지 않지만 이마저도 우리에겐 큰 돈"이라고 했다. 설씨의 남편은 간질장애5급이라 네 식구는 사실상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식비(食費)의 비율은 턱없이 낮았다. 김선미 간사는 "15가구 전체가 과일 한 번 사 먹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이들의 하루 평균 식비는 1인당 2,000원 가량에 불과했다. 정모(69)씨는 "갈치 두 마리를 만원에 사서 공동냉장고에 얼려 놓고 한 달을 먹었다"고 털어놨다.

이들에게 빈곤은 개인으로선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굴레 같다. 다수의 기초생활수급자가 장애와 질병을 앓고 있어 일반적인 노동이 힘든 상황, 오히려 의료비 등 갑작스런 지출로 '마이너스' 상황에 처할 경우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민보위의 설명이다. 이상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기본검사라 할 수 있는 컴퓨터단층촬영(CT)과 초음파 검사 등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무료로 제공되지 않아 수급자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별 특성에 따라, 또는 1인 가구인지 영·유아 가구인지 등 가구 특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맞춤형 지급 기준을 한시라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1세의 한 주부는 가계부 귀퉁이에 이렇게 썼다. '오늘이 아이 백일인데, 좋은 걸 못해줬다. 언제 좋은 날이 올까.'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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