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최근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 경쟁 구도가 '9룡 쟁투'로 불렸던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 레이스와 흡사하다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현재 여권의 대선주자 경쟁은 대선을 2년 반 앞두고서, 막 걸음을 떼는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대선주자 경쟁 구도가 자리 잡혀 가는 꼴이 닮았다는 점을 정치권에서는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큰 유사점은 대통령과 여당 차기 유력주자의 관계다. 9룡 경쟁 당시 김영삼(YS)전 대통령과 유력주자였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 간에는 1994년 총리 권한 행사 논란으로 파인 갈등의 골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가 마냥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한번 만들어진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고, YS로 하여금 끊임없이 다른 주자를 키워내 이 대표를 견제하도록 한 동인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도 지난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쌓인 앙금이 그대로 놓여 있다. 최근의 상황을 주류측의'박근혜 포위하기'로 보는 이들은 이 대통령 역시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친이계 대선주자들을 키워내고 있고, 또 키워낼 것으로 본다.
대통령이 '세대교체' 화두를 꺼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당시 YS는 95년 지방선거 패배 뒤 '깜짝 놀랄 젊은 후보'를 언급하며 세대교체를 꺼냈고, 결과적으로 당시 47세 이인제 경기지사가 부상했다. 이 대통령 역시 지방선거 패배 뒤 세대교체를 언급했고,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총리 후보자로 발탁했다. 김 후보자의 나이는 48세다.
당초 야당의 집권 가능성을 낮게 봤다는 점도 지금과 비슷하다. 당시 정치권은 DJP연합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고, DJP가 이뤄진다 해도 집권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했었다. 97년 1월 현대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여야의 집권 가능성은 각각 63대12였다. 당연히 여당 대선후보가 되는 것은 곧 대권 쟁취로 인식됐다. 9룡이라는 전례 없는 다수 주자가 등장한 것도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10룡, 11룡 얘기까지 나오는 것도 차기 집권 가능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론 그때와 다른 점도 많다. 지지율을 놓고 보면 지금 박근혜 전 대표가 독주하는 상황이지만 당시엔 이회창 대표의 독주체제가 아니었다. 이 대표는 당시 YS에 반발하며 '대쪽'이미지를 만든 94년을 즈음해 잠깐 지지도 1위 자리에 등극했을 뿐, 96년과 97년 연초 실시된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는 박찬종 전 의원의 뒤를 이은 2위였다.
또 이 대표는 당시 신한국당 영입파로서 비(非) 민주계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었을 뿐 당내 기반이 그리 공고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친박계라는 세력을 거느린 당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당시 야당이 비록 집권 가능성은 낮아 보였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부동의 후보가 있었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다. 지금 야당에는 부동의 대선후보가 없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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