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해안포가 북방한계선(NLL)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나."(기자)
"당연하다. 시나리오에 있다."(군 관계자)
"그럼 또다시 도발해도 경고통신만 할 건가."(기자)
"…."(군 관계자)
11일 군 관계자와 기자 사이에 오간 대화의 일부다. 9일 북한의 해안포 공격은 우리가 속절없이 당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군은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며 으스대는 분위기다.
하지만 군의 속내는 편치 않다. 당장 NLL을 무력화시킨 해안포 공격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지 혼란스럽다. 대응사격을 하자니 일관성이 없는 게 되고, 가만 두자니 비판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영토가 농락당했는데도 아무런 물리적 대응 없이 말로 경고하는데 그친 탓이다.
영토주권은 군이 지켜야 할 최고의 원칙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정부와 군은 이러한 원칙을 재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5월24일 대국민담화에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즉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고 밝히자 군 지휘부는 너나 할 것 없이 영토수호 의지를 불태웠다. 특히 북한이 가장 꺼려하는 대형확성기와 살포용 전단을 동원해 "추가 도발할 경우 즉각 심리전을 재개할 것"이라고 누차 경고했다. 전에 없는 강경 원칙을 고수하면 북한이 꼬리를 내릴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결과적으로 군은 지키지도 못할 원칙을 수도 없이 되풀이해온 셈이 됐다. 북한이 쏜 포탄이 NLL을 넘었는지를 놓고 시간을 허비하면서 현장지휘관의 재량은 무시됐고 얼마든지 수위 조절이 가능한 대응사격은 타이밍을 놓쳤다. 북한을 직접 자극하는 대북심리전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많다.
북한에 무작정 본때를 보이라는 말이 아니다. 군 스스로 설익은 원칙에 얽매여 대북 압박카드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김광수 정책사회부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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