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와 말복(末伏)이 지나면 더위가 한풀 꺾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상청은 9월 초순까지 고온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폭염이 연일 이어지면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지럼증은 단순히 더위 탓일 수 있지만 치료가 필요한 병의 전조 증상일 수도 있으니 반드시 원인을 확인해 봐야 한다.
더위로 인한 고체온증이 원인일 수 있어
뇌 시상하부에는 신체 온도변화 정보를 수집하고 체온을 정상으로 돌려놓도록 지시하는 체온감지기능이 있다. 그런데 자율신경 조절능력이 떨어지면 신체의 열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하거나 반응체계가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못해 고체온증이나 저체온증에 걸린다. 특히 고령인과 어린이는 외부 온도에 대응하는 기능이 떨어지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고체온증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열경련이다. 팔다리에 쥐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배가 아프며, 어지럽고 목이 마르다. 팔다리에 힘이 빠져 움직이기 어렵고 구역질이 나면 이미 열 탈진상태가 된 것이다. 이럴 경우 시원한 곳으로 옮기고 수분을 보충해 주지 않으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열사병에 이를 수도 있다.
아주 더운 날 두통이나 어지럼증, 구역질이 생기고, 정신이 흐려진다면 고체온증이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귀 전정기관 이상이 원인의 대부분
어지럼증은 귀의 전정기관(몸의 운동감각이나 위치감각을 감지해 뇌에 전달하는 기관)에 생긴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어지럼증의 80% 정도는 이 경우다. 감염과 외상, 고령 등으로 평형을 유지하는 전정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이석(耳石·귓속에 있는 조그마한 돌가루층)이 떨어져 나와 세반고리관으로 들어가면 머리를 빠르게 움직이거나 자세를 바꿀 때 급격한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어지럼증 진단 시 귀의 문제로 인해 증상이 생겼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지럼증의 양상과 기간, 빈도, 동반 증상 유무 등도 확인해야 한다. 임기정 고려대 안암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귀의 이상으로 인해 어지럼증이 생겼는지 여부를 알려면 어지럼증을 유발해 평형기능을 관찰하는 ‘동적체평형 검사’ 등 2~3가지 전정기능 검사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뇌졸중 전조증상일 수 있어
뇌졸중(뇌경색·뇌출혈), 뇌종양, 소뇌 질환 등 뇌를 비롯한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생겨도 어지럼증이 생길 수 있다. 나이가 많고 고혈압과 당뇨병, 심장병, 흡연 등 뇌졸중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어지러우면서 비틀거리면 뇌졸중을 의심해 봐야 한다. 만일 어지럼증과 함께 말이 어눌해지거나, 물체가 둘로 보이고 한쪽 팔 다리가 저리며 힘이 빠지거나, 걸을 때 한쪽으로 쏠린다면 십중팔구 뇌졸중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날 때에는 병원 신경과를 찾아 정확한 검사와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검사 결과, 일과성 뇌 허혈 때문에 어지럽다면 항(抗)응고제와 혈전용해제 등을 투여해 뇌경색 진행과 재발을 막아야 한다.
빈혈ㆍ영양부족과는 관련 적어
어지럼증이 생기면 흔히 영양실조나 빈혈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예전에는 잘 먹지 못해 위궤양이나 소화기 장애, 만성빈혈, 영양부족 등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빈혈처럼 몸 속에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모자랄 때에는 어지럽기보다 무기력해진다. 빈혈로 인해 어지러운 경우는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앉았다 일어날 때 어지럽거나 눈앞이 캄캄해지는 증상은 대부분 기립성 저혈압에 의한 일시적 증상이다. 심한 출혈 등으로 몸 속 피의 양이 급속히 줄어든 상황이 아니라면 단순히 빈혈로 인해 어지러운 경우는 아주 드물다.
어지럼증이 심해지면 대부분 메슥거리고 구토가 나타나므로 급체라고 생각해 위장약을 많이 먹는다. 그러나 어지럼증은 뇌의 자율신경계의 혼란을 유발해 체한 것 같은 증상을 느끼는 것일 뿐, 위장장애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청량음료ㆍ염분 많은 음식 삼가야
어지럼증이 생기면 과로나 흡연, 음주, 수면부족 등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고혈압 환자는 혈압을 조절하고 당뇨병이 있다면 적절히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 지나친 욕구불만이나 스트레스도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므로 운동 등 적절한 해소법을 찾아야 한다. 지나친 다이어트와 폭음·폭식 등 불규칙한 식사습관이나 밤낮이 바뀐 생활도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서대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비만이 지나치면 대사장애로 인한 어지럼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체중을 감량해야 한다”며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거나 커피, 콜라, 사이다 등 청량음료나 염분이 많은 음식도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