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최대 영화제인 토론토국제영화제는 9월12일 열릴 서른 다섯 번째 개막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10년 가량 공 들여 만든 영화제 전용공간 벨 라이트박스가 개막과 함께 문을 열기 때문이다. 5층 건물에 영화관 5개와 전시관 2개 등을 품은 벨 라이트박스는 일류를 지향하는 토론토영화제의 야심을 담고 있다.
벨 라이트박스는 캐나다 출신의 유명 영화감독 이반 라이트만(‘고스트 버스터즈’ ‘유치원에 간 사나이’) 가족이 2,200만 달러어치의 땅을 내놓으면서 씨를 뿌렸다. 통신회사 벨 등 캐나다 유수의 기업이 기부에 동참했고, 많은 재력가들이 지갑을 열었다. 건물 신축과 운영 등에 필요한 금액 1억9,200만 달러 중 82%(1억6,200만 달러)가 기부로 모였다. 도시의 문화 오아시스가 민간의 손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벨 라이트박스만이 아니다. 토론토영화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영화제 예산 2,238만 달러 중 30%(669만 달러)만이 정부 지원금이었다.
9월2일 개막 예정인 제4회 충무로국제영화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전체 예산 24억원 중 7억~10억원 가량을 지원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서울시가 난색을 표하면서 정상적인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누군가는 영화제 개막 한 달을 앞두고 손사래를 친 서울시를 비난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관 주도로 만들어진 영화제의 태생적 한계에 있다.
충무로영화제는 중구청장의 치적 알리기를 위한 전시행정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 속에 중구청 주도로 2007년 출범했다. 집행위원장 등 여러 스태프들은 정치적 외풍 논란을 일으키며 자주 교체 됐다. 영화제 개막식 때마다 정치인들이 무대에 올라 위세를 자랑했다. “영화보다 정치에 더 신경 쓰는 영화제”라는 쓴 소리가 뒤따랐다.
지난해 충무로영화제의 예산은 60억원. 서울시 지원 30억원, 중구청 지원 10억원에 협찬금을 합친 액수로 부산영화제 다음 가는 거대 규모였다. 하지만 상영된 영화들의 수준과 행사 진행에 대한 평가는 냉랭했다. “이런 영화제에 쓸 돈 있으면…”이라는 비판이 충무로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올해 예산이 반토막 난 이유도 지난해의 방만한 운영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 충무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당시 이덕화 집행위원장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뭘 한 번 잘 해보려 해도 돈이 없어서… (행사가 초라해도) 이해 좀 해주세요.” 상대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영화제인데도 여전히 관에 손을 벌리며 돈타령을 했던 충무로영화제의 미래는 이미 그때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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