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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괴짜'가다피와 한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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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괴짜'가다피와 한국 언론

입력
2010.08.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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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ㆍ8년 전, 오랫동안 교류가 없던 주한 리비아 대표부의 공보 책임자가 점심 초대를 했다. 예전부터 우호적인 글을 쓴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리비아 방문 초청을 했다. 가다피 국가원수와 회견도 주선한다고 했다.

선뜻 반길 만 했으나 번거롭다는 생각에 국제부 기자를 대신 추천하겠다고 했다. 그는"형편이 되면 언제든 연락해달라"며 아쉬워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전후해 가다피가 서방과의 관계개선과 이미지 변신을 꾀한 것과 관련 있는 듯했다.

외교 갈등 부추긴 부정적 보도

1980년 대 중반에는 미국과의 분쟁에 객관적 기사를 써 고맙다며 조촐한 연말 선물을 보내곤 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중동의 미친 개'타도를 공언하고 수도 트리폴리를 공습, 가다피의 어린 양녀 등 많은 민간인이 숨졌다. 미국은 리비아의 국제테러 지원을 무력응징의 명분으로 삼았다. 가다피는 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고, 이란ㆍ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란 혁명세력을 편들었다. 그러나 반목의 근원은 가다피가 1969년 친서방 왕정을 쿠데타로 전복하고 사회주의혁명 노선을 추구하며 석유 무기화 등에 앞장 선 것이다.

리비아는 1990년 대 줄곧 경제 제재와 고립을 겪었다.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에 추락한 미 여객기 폭파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것이 결정적이다. 애초 이란과 시리아를 의심한 미국과 영국은 3년이나 지난 1991년 느닷없이 리비아가 범인이라며 정보요원 2명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이 로커비 사건 줄다리기와 8년간의 경제 제재로 우리 건설사도 피해를 봤다.

오랜 제재에 지친 리비아는 1999년'범인'2명을 넘겨주고 15억 달러 배상금 지불에 합의했다. 그 대가로 족쇄에서 벗어났다. 우리 언론은'테러 응징에 새 장(章)'이라고 보도했으나,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여러 권위 언론은'로커비의 진실'을 의심하며 가다피의 전략적 타협으로 평가했다.

그 뒤 블레어 영국 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앞다퉈 리비아를 찾아 석유 이권을 따냈다. 2007년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를 이사국으로 선출했고, 이듬해 미국은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문에 이어 40년 만에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지난해 9월에는 가다피가 뉴욕 한복판에 베두인 유목민 천막을 치고 머물면서 유엔 총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무려 1시간40분 동안 케네디 암살, 기후변화, 안보리 과오 등 숱한 주제를 논하며 서방을 꾸짖고 자신을 뽐내'괴짜'평판을 확인시켰다. 언론은 연설보다 베두힌 천막 논란을 희화적으로 전하는 데 열 올렸다. 그러나 영국 가디언의 대표 논객 사이먼 젠킨스는"정상회담에서 사진 찍기에 바쁜 다른 지도자들보다 나았다"고 논평했다. 가다피가 대학노트 수십 쪽에 직접 쓰고 붉은 펜으로 거듭 수정한 원고를 들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에 주목한 논객도 있다.

세상 보는 안목부터 반성을

가다피는 시크(chic)한 혁명지도자, 좌충우돌하는 40년 독재자, 기행을 일삼는 괴짜로 흔히 묘사된다. 그러나 그는 균형발전을 이루고, 대수로(大水路) 공사가 상징하는 녹색혁명을 일찍부터 이끌었다. 또 범(汎)아프리카 주의를 표방, 빈국들에 손 큰 원조를 베풀어 칭송 받는 지도자다. 지난해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 의장을 맡으면서'왕중왕'칭호를 받은 것은 한갓 해프닝이 아니다.

'지도자 가다피'를 장황하게 얘기한 것은 최근 외교 갈등에 우리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작용했다고 해서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천안함 사태에서도 보수언론은 로커비 사건을 예로 들며 범인 입증을 낙관했다. 가다피가 화낼 만하다.

진보언론이라고 다르지 않다. 반미ㆍ 민족 논리에 기울면서도, 북한을 제외한 제3세계'독재'는 마냥 비판한다. 중국 이란 등을 민주와 인권을 잣대로 재단하기 일쑤다. 무작정 정부의 외교 실패를 탓할 게 아니다. 언론 스스로 세상을 보는 안목과 자세를 돌아볼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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