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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47> 조선은 선비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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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47> 조선은 선비의 나라

입력
2010.08.0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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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선비의 나라이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사의 나라라면 조선은 문사의 나라이다. 고려가 귀족의 나라라면 조선은 사대부·사림의 나라이다. 사대부와 사림이 ‘선비 사’자로 시작되니 조선은 선비의 나라라 할 수 있다.

지난 8월 3일 국립박물관에서 ‘조선실’을 개설했다. 시대별로 전시실을 별도로 개설하는 일환이었다. 국립역사박물관이 없는 상황에서 시대별 역사실을 개설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것이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독립 역사박물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조선실 개설의 캐치프레이즈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나라 조선’이라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끌어 간 사람들은 사대부요, 사림이요, 붓 빠는 선비들이다. 사농공상 중 ‘사’가 그들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을 내세워 통치해 온 나라이다. 더구나 천인은 비자유민으로서 공민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되어 있었다.

왜 ‘사농공상의 나라’라고 했느냐고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선비의 나라’라고 하면 서민이 빠지고 지배층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민중사관과 유관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민중과 서민은 다르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선비가 건국하고, 운영해 온 나라를 굳이 서민을 낀 사농공상의 나라라고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혹시 정부의 친서민정책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민본주의는 어디까지나 선비들의 덕치를 표방한 것일 뿐이요, 백성들은 덕치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 점이 현대 민주주의와 다른 점이다. 선비들은 지주요, 관료요, 지식인으로서 조선의 정치주체였고, 그들이 내세우는 여론정치도 사론(士論), 즉 선비들의 여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의 정치는 먹물 든 지식인의 정치였기 때문에 마치 법제적으로 천인을 뺀 모든 신분이 공평한 것 같이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했다. 법제가 제정되자마자 현실과 괴리되고 관행이 법제보다 우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선비의 나라는 무력보다는 문화를 중시하고 국가안보도 군사력보다는 외교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문화는 중국 다음가는 소중화에 도달했으나 문약한 흠이 있었다. 선비들은 심성수양에 저해되는 상공업을 누르고 쿠데타를 의식해 군사력을 키우지 않았다. 서세동점의 정세에서 조선이 국권을 잃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 문화를 발전시킨 선비들의 장점과 문약에 흘러 국권을 잃은 선비들의 약점이 동일물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점과 단점은 다 선비들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조선을 이끌어간 선비의 실상을 밝히고 그 장점은 이어받고 그 약점은 개선해 나아가는 것이 조선시대사 연구의 과제이다. 따라서 서민의 역사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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