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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여름나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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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여름나무의 추억

입력
2010.08.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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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기

투명한 햇빛으로 들끓는 텅 빈 정적 속에서

모가지를 꺾고 툭툭 떨어지는 붉은 꽃들은

결코 네 피가 아니다, 네 얼굴이 아니다.

한여름 잎들의 샤워꼭지에서 짙은 그림자를

쏟아 붓는 진초록 그늘이 한결 너답다.

머리카락 그림자를 깊게 빨아들인 너의 얼굴,

검푸른 수면에 무지개 빛 반짝이는

기름을 띄운 듯 너의 얼굴에 햇빛 조각들이

가볍게 떠돈다.

햇빛 조명이 정오의 적막함을 밝게 비추고

불붙은 뜨거운 공기 사이로

짙푸른 잡풀들이 몸을 비튼다. 온갖

날벌레들의 날개 소리만이 귓속에 가득해서

거기 너로부터 아득히 먼 곳으로 나는 허공을

날갯짓도 없이 날아왔다.

저기 저 아래 바다 위에 촘촘히 떠 있는

섬들은 내가 네 밑에 물결처럼 드러누웠을 때 본

너의 진초록 잎들 같다.

올려다 본 하늘 바다에 별이 된 너의 섬들,

섬으로 떠 있는 너의 잎들.

네게서 멀리 떠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나는

열매처럼 너의 이름을 입안에 넣어본다.

너의 맛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이 여름

나는 결코 너의 이름을 입 밖으로 뱉어낼 수가 없겠구나.

안녕, 나의 진초록들이여.

● 입추 지나 처서까지는 눈과 귀와 코와 입을 바꾸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의 빛이며 산색이 바뀌니, 또 여름 과일이 들어가고 가을 과일이 나오니, 매미들 사라진 자리에는 귀뚜라미들…. 인생은 왜 늘 변하는 걸까, 그런 상념에 젖어 코끝이 시큰거리다가도 뜨거운 볕을 받으면 또 눈살이 찌푸려지는, 미묘한 보름 남짓. 여름 나뭇잎들에게 작별하라고 있는 보름 같아서 해마다 입추 지나 처서까지는 늘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잘 담아두세요. 이 반짝이는 진초록 빛들. 그게 잘 헤어지는 방법이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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