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청사진을 갖고 출발했던 대형 복합단지개발 사업들이 잿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부동산 호시절에 계산된 사업성과 과감한 개발계획으로 추진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 시장 침체 등과 맞물리면서 예기치 못한 나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시공사인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을 잇따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내몰았던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개발사업이 파산절차를 밟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업계 일각에선 ‘PF대란’이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번 파산신청은 사업을 접고 ‘빚 잔치’를 하는 유형은 아니다. 오히려 부실한 시공사와 시행사를 바꿈으로써 공사를 재개하려는 ‘기술적 파산’성격이 짙어, 상황을 확대 해석해선 곤란하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부동산경기침체의 결과이고, 30조원대 용산역세권개발과 판교 알파돔시티, 광명역세권개발 등 초대형 PF 사업들이 현재 줄줄이 좌초위기에 처해있는 만큼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어떤 사업인가
2000년 시작된 이 사업은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에 오피스빌딩과 연구개발(R&D)센터, 쇼핑몰, 백화점, 복합물류센터 등을 건설하는 대형 복합단지 개발 프로젝트. 하지만 인ㆍ허가를 받는 데만 6년 이상 걸리면서 금융비용과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PF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이는 결국 시공사인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이 잇따라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시공사 2곳이 워크아웃에 들어감에 따라 채권단은 시공사 재선정 작업에 들어갔고, 입찰에 응한 GS건설 대우건설 등과 현재 단독시공 및 책임준공 등 세부 사업참여 조건에 대해 협상을 진행중이다. 그러나 현재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은데다, 늘어난 사업비용 등을 계산하면 안정적인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새로운 사업자 구성이 예상만큼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왜 파산인가
양재동 복합터미널 PF사업의 파산엔 좀 특수성이 있다. 채권단은 이번 파산신청이 ▦공사를 중단하거나 ▦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조치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양재동 부지개발의 수익전망은 여전히 밝지만 부동산 경기악화로 시공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간데다 시행사마저 여러모로 능력부족을 드러내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것. 즉 시행ㆍ시공사를 바꿔 공사를 계속 추진하기 절차로서 ‘파산’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르면 한두 달 안에 토목공사를 시작으로 개발사업이 본격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PF 대란 현실화 가능성은
현재 대형PF들은 줄줄이 사업중단사태를 맞고 있다. 건국 이후 최대 개발사업이라 꼽히는 용산역세권개발사업도 이미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으며 공중분해 위기에 몰린 상태. 판교신도시 핵심 상업시설 조성사업인 알파돔시티 역시 자금난으로 사실상 사업중단 상태다. 양재동 복합터미널PF의 경우 청산 아닌 회생을 위한 파산신청인 만큼 그 자체 큰 충격은 없겠지만, 어차피 전체 PF시장이 극심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만큼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모형 PF사업은 40여곳, 금액으론 12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 PF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상 추진되는 사업은 거의 없는 상태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PF사업이 첫 삽도 못 뜨고 중단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시장 침체와 그에 따른 건설업계 유동성 위기가 주된 원인”이라며 “부동산 호황기에 짜인 사업일수록 장밋빛 청사진이 강조됐을 가능성이 큰 만큼, 사업 위기 관리가 얼마나 잘 대비돼 있느냐가 PF사업 성패와 직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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