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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장편소설 ‘A’ 낸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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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장편소설 ‘A’ 낸 소설가 하성란

입력
2010.08.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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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하성란(43)씨가 네 번째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발행)를 펴냈다. 하씨가 장편으로는 (2001) 이후 9년 만에 낸 것이다.

의 바탕이 되는 3가지 모티프가 있다. 먼저 영미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너대니얼 호손의 . 간통을 저지른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그 벌로 가슴에 달고 살던 문자 ‘A’의 다의성은 하씨의 이번 작품에서 주요 소재다. 그 다음은 하씨가 10년 전쯤 신문에 연재한 중편 ‘주홍글씨’로, 가부장적 결혼제도를 거부하고 여성 공동체를 추구하는 재기발랄한 현대판 아마조네스의 이야기다. 마지막은 하씨가 “트라우마와 같은 사건이었다”고 회고하는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공예품 제조사 오대양의 공장에서 사장, 종업원 등 32명이 한꺼번에 죽은 채 발견된 이 사건은 이 회사가 종교와 기업이 결합된 조직으로 밝혀지면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신신양회가 운영하는 지방 시멘트 공장에서 벌어진 집단적 죽음으로 소설을 시작한 작가 하씨는 신신양회가 종교단체인 동시에 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로 이뤄진 공동체였다는 상상력을 편다. 엄마와 함께 공장에 있었던 열아홉 살 주인공 ‘나’는 사건 현장을 볼 수 없는 맹인이란 이유로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세간에선 사교(邪敎) 조직의 집단 자살로 치부하지만, ‘나’는 축축한 손을 지닌 낯선 인물이 엄마와 이모들을 죽였음을 알고 있다.

3년 뒤 그녀는 사건 당시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 화를 면했던 다른 2세들로부터 폐허가 돼버린 공장에 다시 모이자는 연락을 받는다. 모두 여자인 이들은 엄마들이 꿈꿨던 사회를 재건하고자 한다. 결혼은 거부하되 우수한 형질의 남자를 물색해 동침하고, 육아와 살림을 공동으로 해나가는 공동체.

공동체 이름을 ‘A’로 정하고 만족스러운 나날을 구가하던 이들 앞에 또다른 이모의 아들 기태영이 나타난다. 재벌 회장이 자기 생부라는 사실을 안 태영은 그에게 신신양회를 되살릴 자금을 받아낸다.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회사를 빠르게 되살린 태영은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도모하고, 이에 대한 찬반이 갈리면서 공동체엔 균열이 일어난다. ‘나’는 태영이 ‘축축한 손’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알고 사업 확장에 강하게 반대하지만, 태영을 편드는 이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가부장제의 굴레를 벗고 욕망에 충실하려던 그녀들의 공동체가 외부의 자본과 권력, 내부의 탐욕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작가는 특유의 정밀한 서술과 묘사를 통해 추적한다. 파국의 대물림은 인간 사회의 진보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비관적 태도를 보여준다.

하씨는 “노아의 방주, 바벨탑 같은 성경 속 일화들이 보여주듯 애써 쌓은 성과를 허무하게 무너뜨리고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인간 역사의 패턴”이라고 말한다. 그가 지난달부터 웹진 문지에 연재하고 있는 새 장편 ‘여우 여자’에서도 500년 묵은 구미호가 남자를 만나 인간으로 거듭나려는 행위를 지긋지긋하게 반복한다.

작가 하씨의 비관주의는 그러나 ‘허무’ 대신 ‘다시 시작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신신양회는 문을 닫았지만 ‘나’는 태영의 아기를 낳아 기르고 마흔여섯 살엔 다시 앞을 보게 된다. “나는 살아 있다. 살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들을 보고 있다. 세상은 아름다웠다.”(279쪽)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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