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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44) 이옥(李鈺)의 '흰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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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44) 이옥(李鈺)의 '흰옷 이야기'

입력
2010.08.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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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금자(絅錦子) 이옥(1760~1812)은 정조(正祖) 시대의 문체파동(文體波動)에 연루될 만큼, 시속의 변화나 개인의 서정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소품(小品) 문으로 이름난 문인이었다. 30살 전후에 성균관의 유생이었으나 ‘괴이한 문체’로 임금에게 벌을 받고, 36살 때는 충청도 청양과 경상도 삼가현(三嘉縣, 합천군)으로 유배되면서도, 동문 강이천(姜彛天))이 “붓 끝에 혀가 달렸다”고 평한 자기식의 글쓰기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특히 40살을 넘어가는 네 달 동안은 유배지의 토속과 세상물정과 속담[俚言]과 같은 지방문화에 세밀한 보고의 글들을 많이 남겼다.

그 가운데 ‘흰옷 이야기(白衣裳)는 그가 머물렀던 경상우도(慶尙右道)의 백의(白衣) 풍속을 다룬 글이어서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는 푸른색을 숭상하여 백성들이 대부분 푸른 옷을 입는다…. 여자는 치마를 소중히 여기는데, 더욱 흰색을 꺼려, 붉은 색과 남색 이외에 모두 푸른 치마를 둘렀으며,… 삼년복(三年服)을 입지 않으면 또한 일찍이 이유 없이 흰 옷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영남의 우도(右道)만은 남녀가 모두 흰옷을 입으며,… 오직 기녀와 무녀(巫女)만이 푸른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대개 푸른색을 천시하고, 흰색을 숭상하기 때문이다.”(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2. 휴머니스트, 51쪽)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백의민족으로 일러왔으나, 고려 후기와 현종ㆍ숙종 대 이후에는 동방의 색으로 푸른 옷 입기를 장려했다. 특히 치마를 소중히 여기는 여자는 더욱 흰 색을 꺼려, 붉은 색과 남색 이외에 모두 푸른 치마를 입는다고 했고, 삼년복이 아니라면 까닭 없이 흰옷을 입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붉은 색’ 치마는 ‘녹의홍상[綠衣紅裳]’으로, 이른바 ‘홍색짜리’, 남색 치마를 입는 ‘남색짜리’로, 지금껏 이어지는 새색시 옷차림이다. 또 합천의 객점에서 쓴 ‘늙은 여종의 붉은 치마(老婢紅裙)’라는 글에서는 신행(新行) 가마를 따라가는 늙은 여종까지도 붉은 치마를 입었던 풍속을 전하여, 이 영남 우도의 백의 풍속을 강조했다. 이옥은 이렇게 스스로 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그 땅의 풍속을 그려 주었다.

이렇게 영남의 우도만은 남녀가 모두 흰옷을 입으며, 갓 시집 온 새색시까지도 흰 저고리와 치마를 입는다고 했다. 이것은 흰옷을 존중하는 영남 풍속을 평가하는 뜻을 담았다고 할 터이고, 또한 빈주(賓主)의 예로 맞아준 어느 초당(草堂)의 선비풍속()과도 이어지는 지역평가일 터이다. 또한 이것은 그의 이종사촌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동인이었던 이덕무((1741-93)의 에서 “여자들의 저고리는 너무 짧고 치마는 너무 길고 넓어 요사스럽다”고 한 동시대의 영남 풍속이어서 더욱 대조가 된다. 이 시대에는 기생의 짧은 저고리 길이가 12㎝까지 짧아졌다는데, 200년이 흐른 지금은 젊은 여자의 치마 길이가 이에 육박하니, 지방문학의 역사는 사회사이며 풍속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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