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 고려청자의 은은한 아름다움이 현대미술과 만났다. 전남 강진군이 매년 여름 여는 강진청자축제와 연계해 올해 첫 출발한 전시 ‘강진 셀라돈 아트 프로젝트’다. 7일 개막한 이 행사에서는 강진청자박물관, 도예문화원 등에 전시된 고려청자와 고영훈 배병우 서용선 윤석남 이왈종 등 국내 유명 작가 50여명의 현대미술 작품이 수백년의 시간 차를 넘어 숨결을 서로 나누고 있다.
작가들은 지난해 봄부터 강진 일대를 답사하고, 청자 제작 과정을 지켜본 뒤 신작 120여점을 제작했다. 강진의 청자와 자연,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 강진 출신 시인 김영랑 등 강진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표주박 모양 주전자, 연꽃무늬 대접, 물고기무늬 접시 등 각종 고려청자 뒤에는 임남진씨가 한지에 먹으로 그린 도자기와 꽃 그림, 김선두씨가 푸른색으로 표현한 강진의 포구 그림, 김억씨가 판화로 펼쳐낸 강진만의 모습 등이 걸렸다. 한 공간에 놓인 미술작품과 청자들은 마치 처음부터 짝을 이루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윤석남씨가 도예가 황보복례씨와 협업한 설치작품 ‘조각배’는 강진 청자를 개경으로 실어나르던 청자 운반선 모형 주위에 고무신 모양으로 만든 청자 수백 개를 둘러 옛 사람들의 발길을 떠올리게 한다. 그 뒤편으로는 원색의 거친 터치로 청자를 싣고 가는 뱃사람을 되살린 서용선씨의 그림 ‘출항’이 걸려 생동감을 더한다.
작가들의 상상력은 청자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미디어 작가 이이남씨의 작품에서는 모란무늬 정병 주위로 물고기와 거북이들이 노닐고, 박물관 앞 야외 공간에는 조각가 성동훈씨가 수천개의 청자 구슬로 만든 사슴이 당당하게 서있다. 위영일씨의 ‘청자를 지켜라’는 배트맨의 머리에 스파이더맨의 손과 헐크의 몸을 지닌 짬뽕맨이 청자를 훔치려는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만화가 박재동씨는 직접 구운 자기 접시 위에 김연아 박지성 전도연 등 스타들의 얼굴을 그렸고, 극사실화가 정정엽씨는 작은 연둣빛 곡식 씨앗으로 청자매병의 실루엣을 만들었다.
김영랑이 살았던 집을 복원한 영랑 생가의 방 안에는 김근중씨가 그린 탐스러운 모란 그림과 정종미씨가 모시를 염색해 만든 미인도 병풍이 더해졌다. 백련사의 다실과 만경루에는 백련사 대웅전 뒤로 뜨는 달을 그린 이종구씨의 그림 등이 조용히 자리잡았다. 미술관 하나 없는 작은 마을에 현대미술이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전시 총감독을 맡은 한국화가 김선두 중앙대 교수는 “전통 청자가 현대미술과 만남으로써 새로운 경쟁력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며 “2년마다 정기적으로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1월 30일까지. (061)430-3174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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