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우리 날개의 밀랍을 녹이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는지 알아보자."( 천체물리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
컨테이너는 무엇이든 싣고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한 지역에 머물던 희망, 바람들을 거대한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까지 전달하는 컨테이너! 그것을 실어 나르는 선박에 오르는 일은 내 삶에 한 획을 긋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거대한 컨테이너의 가능성에 대한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의 특강을 들으러 갔던 그 순간부터 난 이미 기적의 출발점에 서 있었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나는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고, 그 가치관을 습득하는 노력을 강조하는 나의 전공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꿈을 펼칠 기회는 한국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바다 너머의 훨씬 먼 세계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도 정작 그 문화권을 실제로 경험하거나, 일선에 뛰어들기엔 먼저 겁부터 났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한진해운 승선체험에 참여하게 됐다.
아는 바가 거의 없었던 해운업의 현장을 경험하는 일은 민물에 머물러 있던 내가 전혀 낯선 바닷물로 뛰어드는 일과 같았다. 수많은 정보들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크레인과 컨테이너들이 넓은 대지에 펼쳐져 있는 장면, 지도에 점점이 박혀있는 항만 구역 표시들, 밤바다를 환히 밝히는 수많은 항로 표시등, 5,000개의 컨테이너가 움직이며 내는 소음과 노란 불빛이 처음엔 그저 신기하고 멋진 볼거리 정도로 각인되는 듯 했다.
그러나 내가 보고 듣는 것은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것들은 이내 나를 각성시키는 하나 하나의 요소로 변했다. 해운 회사의 승선체험을 하면서도 아무런 사전 공부 없이 그저 가벼운 여행 정도로 여기고 준비한 점이야 차치하고라도, 나는 과연 내 전공 분야에 대해서만이라도 얼마만큼의 열정과 애정을 쏟아 붓고 있는지, 나의 얕은 지식의 한계에 부딪히다 못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은 닫아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이켜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관심이 없는 동안에도 거대한 바다를 무대로 세계는 더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고 있었다. 그 무대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호쾌한 마음가짐, 자부심, 그리고 열정과 애정을 직접 몸과 가슴으로 느끼면서 한편으론 가슴이 벅차 오르면서도 한편으론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많은 분들이 아시아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반도 국가 한국을 발판 삼아 중국을 넘어, 지구 반대편의 라틴아메리카까지 몇 십 일간의 항해를 하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일하고 있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오늘날 모든 대학생들의 공통적인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남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남들이 하는 만큼만 노력하며, 한 자리에서 발버둥치던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얼마나 작은 울타리의 한계 속에 갇혀있었던가를 깨닫게 됐다. 세계를 향한다는 마인드는 단순히 만국 공통어인 영어를 습득하고, 몇 가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는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한나 서강대학교 영미어문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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