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전쟁 중 일본의 원폭 희생자를 기리는 평화기념식이 6일 히로시마(廣島)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원폭을 투하한 미국의 주일 대사를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 주요 핵무기 보유국 대표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처음 참석했다. 일본은 이들의 참석을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을 위한 진전으로 반겼지만 원폭 투하로 전쟁을 종결했다는데 적잖은 의미를 두는 미국은 여전히 신중한 모습이었다.
원폭 희생자 26만9,446명의 명부 봉납으로 이날 오전 8시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에서 시작된 ‘원폭희생자위령식ㆍ평화기념식’에는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를 비롯해 일본 내외에서 5만5,000명이 참석했다. 아키바 다다토시(秋葉忠利) 히로시마시장은 평화선언을 통해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회의 최종문서에 ‘핵무기금지조약을 포함해 새로운 법적 장치의 필요성’이 포함된 점을 평가하면서 일본 정부에 “비핵3원칙의 법제화와 ‘핵우산’ 탈퇴”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간 총리는 “비핵3원칙 견지”를 약속하면서 “구체적인 핵군축ㆍ비확산 조치를 제안해 국제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공헌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나가사키(長崎)를 방문해 한일 피폭자들을 만나고 조선인희생자추도비에 헌화한 반 총장은 이날 “핵무기가 존재하는 이상 우리들은 핵의 그늘에 떨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며 “2012년까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발효시키자”고 목표를 제시했다. CTBT는 199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해 154개국이 서명했지만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이 비준하지 않아 발효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보다 15개국이 늘어난 74개 참가국 대표 가운데는 단연 존 루스 주일 미 대사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은 미국 대사의 참석을 반기면서 향후 비핵화 추세가 확대되길 적잖게 기대하고 있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외무성 부장관은 5일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핵 비확산, 군축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며 “미국 등 대표의 참석도 각국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루스 대사는 이날 문서로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들은 핵무기가 없는 세계 실현을 목표로 앞으로도 협력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짧은 담화만 발표하고 기념식장에서는 일절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행사에서도 묵념 이외에는 헌화도, 인사말도 없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원폭을 투하한 것이 옳았다는 사람이 60%를 넘는 자국의 여론을 고려해야 하는 미국 정부로서는 여전히 ‘히로시마’가 조심스러웠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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