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강희락 경찰청장의 돌연한 사퇴 소식이 알려지자 경찰청이 크게 술렁거렸다. 청장 비서실과 대변인실 등에 전화가 빗발쳤고, 직원들은 진위를 파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전 청사에 출근했을 때도 사퇴와 관련해 일언반구 이야기가 없었다"며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강 청장의 사퇴결심은 최소 3주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고위 관계자는 "꽤 오랫동안 사퇴를 고민해온 것으로 안다"며 "5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휴가에서 돌아오면 바로 사표를 내려고 한 듯하다"고 말했다. 강 청장이 지난달 중순 원래 계획했던 하계휴가(8월2~6일)를 이달 말로 미룬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임기만료를 7개월이나 남겨둔 강 청장이 "지금이 적기"라며 사퇴표명을 한 데는 지난 6월부터 잇따랐던 경찰발 잡음과 이로 인한 정치권과 여론의 비난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강 청장은 서울 양천경찰서의 피의자 고문 사건과 관련해 6월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무리한 성과주의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질책을 받았다. 6일 후인 28일 채수창 전 강북서장이 수뇌부 사퇴를 요구하는 하극상 사태를 일으키면서 정치권의 퇴진압력은 더 높아졌다. 경찰관계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대비 체제를 불과 이틀 전 본격화한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적절한 시점은 아닌 것 같다"며 "경찰에 대해 한두 달간 집중된 비난이 큰 부담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최근 강 청장이 여론의 비난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반박 발언을 했던 것도 사퇴를 염두에 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 안산 초등생 납치범 검거 경찰을 격려하면서 강 청장은 "경찰 탓만 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속내를 밝혔다. 이달 2일에는 서울 남대문서를 방문해 "언론의 칭찬은 토끼 머리에서 뿔 나기를 바라는 격"이라고 수위를 한층 높였다. 3일 대구를 방문하는 길에 경찰이 교통신호를 조작해 길을 터준 것에 대해 기자가 "지시한 것이냐"고 묻자 강 청장은 "지시는 미쳤다고 지시합니까"라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한편, 후임 청장으로는 모강인 경찰청 차장, 조현오 서울경찰청장, 윤재옥 경기경찰청장, 김정식 경찰대학장 등 치안정감 중 조 청장이 관례상 유리하지만 양천서 피의자 고문 사건, 채 전 서장 항명 등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특별한 잡음이 없었고 경찰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윤 청장이 부상하고 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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