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딥(double-dip: 경기 재침체 현상)’의 망령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실 국내경제 전망은 현재까지는 장밋빛 일색. 하지만 글로벌 경제, 특히 미국 쪽에선 둔화, 침체, 심지어 디플레이션 얘기까지 끊이질 않는다. 전ㆍ현직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이 공개적으로 더블딥 우려를 내놓고, 월스트리트의 큰 손들도 최악의 침체 상황에 대비해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만약 세계 수요를 이끄는 미국이 더블딥에 빠진다면 이는 결국 글로벌 침체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과연 더블딥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소비 정체, 성장률 둔화
3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개인소비지출은 전달 0.1% 증가에 이어 6월에는 아예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소득도 전달과 전혀 변동이 없었다. 개인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이다.
반면 저축률은 6.2%로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득이 늘지 않았음에도 불구, 소비자들이 앞으로 찾아올지 모를 경기침체, 그리고 실업사태에 대비해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 것이다. 소득정체 상태에서 저축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체감 경기 위축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몇 달간 실업률이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소비 이외 지표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제조업 경기를 반영하는 6월 공장주문 실적은 전달보다 1.2% 줄면서 2개월째 감소세를 유지했다. 주택시장의 거래 관련 지표인 잠정 주택매매지수는 아예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부동산가격하락은 향후 도래할지 모를 디플레이션 우려를 높여주는 대목이다.
더블딥ㆍ디플레이션 가능성 점증
지난주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잠정치)이 2.4%로 1분기(3.7%)에 비해 크게 하락한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연달아 비관적인 지표가 쏟아지자 더블딥 우려는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이다.
전날 버냉키 Fed의장은 “완전한 경기 회복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고,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지난 1일 “미국 경제가 회복되다가 휴지기에 빠졌다”면서 “주택가격 폭락 시 더블딥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에는 제임스 블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일본식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선 미 통화당국이 국채 등 장기채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해 디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추가경기부양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현재 제로금리는 아주 장기화될 공산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 나아가 Fed는 10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시중 채권 매입 재개 등 추가 경기부양책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장기간 저성장 불가피.. 한국 대비해야
물론 전문가 사이에선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다시 추락하는 전형적인 ‘더블딥’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아직은 우세하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 중 더블딥을 예상하는 비율은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지난해 4분기(5.6%)와 올해 1분기(3.7%)처럼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 역시 드문 실정이다. 당시의 높은 성장률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인위적 경기부양책과 기업들의 재고 확충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었고, 더블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상당기간 1~2%대의 저성장은 계속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의 성장률 5%에서 2.8%포인트 ▦올 1분기의 성장률 3.7%에서 2.4% 포인트는 각각 재고확충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2분기에도 재고확충의 성장 효과는 성장률 2.4% 가운데 1% 포인트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여전히 높았다.
재고확충이란 기업이 생산은 했지만 실제 출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 일단 생산은 됐기 때문에 성장률은 높아지지만, 창고에 쌓여 실제 판매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확대나 기업실적호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흥모 한국은행 해외조사실장은 “역사적으로 재고확충이 성장에 기여하는 기간은 매우 짧았다”면서 “1분기 3% 성장률은 부풀려진 측면이 있고 앞으로는 2%대 초반 정도의 저성장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2일 발표된 미국의 대표적 선행지수인 7월 구매관리자협회(ISM)지수는 전달보다 떨어졌고, 특히 신규주문이 줄어들었다. 이 실장은 “우리나라가 올해 6% 성장을 예상하고 있지만 내년은 올해의 기저효과에다 미국의 저성장 영향을 받아 둔화될 것”이라면서 “특히 우리나라는 중국경제 영향을 많이 받는데 미국의 저성장이 중국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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