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 7주기 추모식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다시 ‘희망’과 ‘긍정’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현대건설 인수전에 적극 참여하고, 남북경협 사업 등도 계속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라는 게 재계 해석이다.
현대그룹은 4일 고 정몽헌 회장의 추모 7주기를 맞아 경기 하남시 창우리 선영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현 회장을 비롯, 계열사 사장단과 임직원 등 200여명은 먼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묘소에서 참배한 뒤 고 정몽헌 회장의 묘소로 자리를 옮겨 헌화하고 묵념했다.
현 회장은 고 정 회장 6주기인 지난해엔 딸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와 함께 금강산을 찾아, 고 정 회장의 유품이 안치된 봉분에서 추모식을 가졌었다. 이에 앞서 북한은 4월 금강산 내 이산가족면회소 등 5개 남측 부동산을 몰수하고 현대아산 등 민간 소유 부동산에 대해서도 ‘동결’ 딱지를 붙였다. 이젠 고 정 회장의 금강산 봉분도 갈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현 회장이 대북 사업을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현 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 7주기 추모식 하루 전날 상환 가능한 외환은행 대출금을 모두 갚고, 이날 선영을 찾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대건설을 인수,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고 정몽헌 회장의 유지인 남북경협 사업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현대그룹이 최근 “현대상선이 2분기 1,53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을 비롯, 전 계열사가 가파른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건설을 인수, 세계적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최적임자는 현대그룹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사실 현대그룹은 지금 사면초가 상황이다. 2003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남편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을 맡게 된 현 회장이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금강산 관광 사업은 2008년 7월 북한군의 총격으로 남한 관광객이 숨지면서 전면 중단됐다. 이미 2년이나 지났지만 금강산 관광 사업이 재개될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3월에는 천안함 사건까지 일어났다. 최근에는 주채권은행과의 갈등도 불거졌다. 외환은행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을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응할 경우 숙원 사업이던 현대건설 인수는 사실상 어려워 진다는 점에서 현대그룹으로서는 대출금 상환 등 초강수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물론 현 회장이 그 동안 어려움을 통해 오히려 더 단련돼 왔다는 점에서 어떤 승부수로 위기를 타개해 나갈지 기대하는 시선들도 적지 않다. 현 회장은 지난해 8월 깜짝 방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뒤 백두산 관광 시작 등 5개항의 합의를 이끌어 낸 바 있다. 이중 실현된 것은 아직 없지만 남북 관계가 정상화할 경우 급물살을 탈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명운을 걸고 있는 것도 이미 북측과 전력, 통신, 철도, 비행장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대해서 독점적 사업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어떤 난관이 우리를 가로 막을지라도 이를 극복하겠다는 승풍파랑(乘風破浪ㆍ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간다)의 자세와 각오로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3월 서울 연지동 신사옥으로 옮긴 뒤엔 ‘창조와 전진’이라는 새로운 그룹 슬로건과 ‘긍정의 힘으로 풍요로운 미래를 개척하자’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현 회장의 ‘긍정’이 현 시국의 폭풍우를 과연 이겨낼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