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인 부대상관이 피해장병에게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실상 살해협박을 하고, 소속사단 지휘관들도 피해자와 가족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사건무마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3개 시민단체는 4일 기자회견을 갖고 가해자인 해병대 2사단 참모장 오모 대령은 물론, 대대장, 부사단장, 사단장 등이 나서 성폭행 사건을 무마ㆍ은폐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해병대 성폭력 사건은 지난달 10일 새벽 오 대령이 군 휴양소에서 술을 마신 뒤 부대 내 관사로 복귀하는 과정에 운전병 이모(22) 상병을 차량 뒷좌석으로 강제로 끌고가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 강제 추행한 일이다.
피해자와 피해자가족이 군인권센터 등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밤 피해자인 이 상병은 수치심에 부대 뒷산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미수에 그친 뒤 어머니 황모(48)씨에게 전화를 걸어 “성폭행을 당했는데 죽고 싶다”고 호소했다. 황씨는 다음날 부대에 있던 오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에 오 대령은 황씨에게 “그런 일 없다. 잘 있다”고 전화를 끊은 뒤, 이 상병을 불러 “너 어머니한테 전화했느냐”며 “부대에서 자살사건 있는 건 알지. 너 정말 죽을래”라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씨는 12일 오전 소대장과 원사 등 간부 3명에게 성폭력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이 상병의 직속상관인 대대장 A소령은“그냥 X 밟았다 생각하고 없었던 일로 하자”며 사건을 덮으려 했다. 하지만 이 상병이 “대대장께서도 자식이 있지 않느냐”며 저항하자 A소령은 이날 오후 5시께 부사단장인 안모 대령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이에 부사단장은 다음날인 13일 오후 4시께 피해자 가족을 만나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오 대령)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밖으로 알려지면 그 후배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며 “사건의 원만한 처리와 합의를 위해 사단장과 헌병대에 사실(성폭력)을 알리지 않았다”고 재차 사건무마를 시도했다. 이에 가족이 항의하자 부사단장은 이날 오후 8시께 사단장인 이모 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지만 사단장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의 태도에 실망한 피해자 가족은 부사단장을 만난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인권위가 지난 달 16일 해당 부대를 방문해 조사에 나서자 군은 뒤늦게 오 대령을 보직 해임했다. 오 대령은 같은 달 24일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됐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사단장 역시 헌병대를 통해 이 사건을 수사지휘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탐문수사나 소환조사, 가해자 긴급체포 등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부대 지휘관들이 성폭행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ㆍ은폐하려 한 정황이 확인된 만큼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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