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가 만든 영화 (After Life)에는 저승으로 가기 전 머무는 역(驛)이 나온다. 죽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하나를 골라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 첫 사랑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순간, 경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날던 순간, 딸의 결혼식. 사람들은 영화로 재현된 아름다운 기억을 들고 영원으로 떠나간다.
온 가족이 함께 했던 여름놀이
오랜 전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생각해봤다. 그 때 내게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 천렵의 추억이었다.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내륙의 지방 도시에 수영장은 아예 없었고, 바다는 지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너무 멀었다. 해수욕장이란 말은 늘 어린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만 그것은 흑백 TV의 여름 특집 공개방송에서나 존재했다. 천렵은 여름 내내 동네 골목의 뙤약볕에 그을리고 있는 우리를 위해 부모님이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피서법이었다.
아버지는 등에 커다란 양은 솥을 지고, 손에는 고기잡이 용 어항을 담은 라면박스를 들었다. 어머니는 채소며 반찬거리가 든 시장바구니를 들고, 형들도 그릇이나 수박을 나누어 들었다. 붐비는 피서 철의 시외버스 속에서 행여 유리 어항이 깨질세라 아버지는 가는 길 내내 라면박스를 머리 위로 올려 들었다.
강가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어항을 놓고 어머니는 강가의 돌을 모아 화덕을 만들고 불을 피웠다. 아버지가 건져 올리는 어항에는 언제나 물고기가 가득 담겨 몸을 뒤채고 있어, 나는 매번 저러다가 유리 어항이 깨지는 거 아닌가 하고 마음을 졸였다. 형들은 뜰채를 들고 고기를 모느라 물을 첨벙거렸고, 누나는 치마를 모아 쥐고 물속을 더듬어 다슬기를 주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견지낚시로 물고기를 낚았다. 물이 맑아서 여울 속에서도 고기가 미끼를 무는 게 보였다. 미끼를 물면 바로 물고기의 팽팽한 힘이 낚시 줄을 타고 짜릿하게 전달됐다. 들어 올리면 몸을 뒤채는 작은 물고기의 몸통에서도 여름의 햇볕은 잘게 부서졌다.
배가 고프면 어머니가 요리하는 화덕 옆으로 갔다. 그러면 어머니는 썰어놓은 무를 집어 주었다. 화덕의 연기는 아무리 피해도 언제나 내 쪽으로 왔다. 강은 평화로웠고, 누군가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언제나 나훈아의 이 나왔다.
얼마 전 참으로 오랜만에 친구들과 천렵을 나섰다. 고향의 강은 아직 그대로였다. 강가의 미루나무들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키는 똑같이 컸다. 사람들은 햇볕을 피하느라 다리 밑에 많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해가 서쪽으로 기울수록 사람들은 그늘을 좇아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자칭 천렵의 귀재라는 친구가 고기 잡는 법을 강의했다.
천렵은 자연에서 먹을 거리를 찾는 가장 원초적인 문화체험이다. 어구만 플라스틱으로 바뀌었을 뿐 고기 잡는 방법은 신석기 시대 이래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 고기는 항상 강물을 역류하니 하류에서 상류로 가면서 잡아야 한다. 자신이 고기라면 어디에 숨을까를 생각해서 고기를 찾아라. 고기를 잡는 것은 격렬한 노동이니 끈기를 갖고 임해라. 손가락보다 작은 것은 놓아줘라. 다들 자외선 방어 용 화장품을 두껍게 바르고 하루 종일 강물을 첨벙거렸으나 고기는 거의 잡지 못했다.
이젠 고기 사서 겨우 매운탕을
천렵의 귀재마저도 자신의 이론을 실속 있게 실현시키지는 못하고 "예전보다 고기가 많이 줄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강가의 식당에서 고기를 사서 겨우 매운탕을 끓일 수 있었다. 노동의 뒤끝이라 꿀맛이었다. 누군가가 을 불렀다. 강 풍경 위로 해가 지고 있었다. 미루나무들이 바람에 일제히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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