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를 관람하다 영화사 고몽(Gaumont)의 이름과 마주치면 반갑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프랑스 영화의 대명사가 된 고몽은 1895년 영화의 탄생과 함께 출발했다. 카메라 엔지니어 레옹 고몽이 설립한 이 회사는 1928년 프랑스 최초의 발성영화 ‘나일의 물’을 만들었고, 1997년엔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로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백 살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명 영화에 여전히 이름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일본의 쇼치쿠(松竹)도 대표적인 100년 영화사다. 1895년 일본 전통 악극 가부키 극장으로 출발해 일본 영화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요즘도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쇼치쿠의 리더필름(제작사를 나타내는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은 많은 일본 영화의 서두를 장식한다.
명필름이 창립 15주년을 맞았다. 만들어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영화사가 부지기수인 충무로엔 의미 있는 경사다. 1995년 설립돼 1996년 첫 작품 ‘코르셋’을 내놓은 명필름은 1960년대에 이은 ‘제2의 충무로 르네상스’를 관통해 왔다. 97년 ‘접속’으로 온라인 시대 젊은이들의 사랑을, 1999년 ‘해피엔드’로 외환위기를 겪은 이 사회의 스산함을 반영했다. 1998년 김지운 감독의 이색 공포영화 ‘조용한 가족’으로 새로운 감독군의 등장을 알렸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음악인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그린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명필름의 솜씨가 빚어낸 수작이다.
2005년 강제규필름과 합병한 뒤 MK픽쳐스 이름으로 ‘그 때 그 사람들’ ‘광식이 동생 광태’ 등을 만들었고, ‘우생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제작했다. “명필름이라는 이름은 충무로의 품질보증 마크”라는 영화계 평가가 허튼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명필름은 창립 15주년을 맞아 2~4일 서울 신문로 씨네큐브에서 ‘접속’ ‘공동경비구역’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을 상영했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15년 동안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온 것을 자축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작은 자리”라고 밝혔다. 영광과 환호만이 15년 세월을 가득 채웠을까? 심 대표는 사석에서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면) 야반도주 할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말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영화만을 생각하고 영화만을 해온 게 큰 힘이 된 듯하다.” 100년까진 아니어도 자기 목소리를 지닌 장수 영화사들이 많이 나와야 충무로가 튼실해진다. 명필름이 그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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