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설적인 총잡이 빌리 더 키드(1859~1881)에 대한 사후사면이 논란을 빚고 있다. 뉴멕시코주 빌 리처드슨 주지사가 그의 사면을 추진하자 그를 사살한 보안관 패트 가렛의 후손 등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AP통신은 2일(현지 시각) 보안관이 악당을 총으로 쓰러뜨리는 19세기 서부개척시대의 고전이 다시 미국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며 이 소식을 전했다.
본명이 헨리 맥가티인 빌리 더 키드는 한국의 장길산, 영국의 로빈 후드, 멕시코의 조로처럼 의적(義賊)의 전설에 빠지지 않는 인물.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멋진 외모에 신기의 총솜씨를 지닌 키드는 21년의 짧은 생애 동안 잦은 투옥과 탈옥을 거듭했고, 무려 21명을 살해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부풀려졌으며, 그가 저지른 범죄는 대부분 우발적이었거나 납득할 만한 사연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는 1878년 뉴멕시코주의 링컨 카운티 싸움으로 유명해졌다. 목장간 토지분쟁을 벌이다 자신의 은인인 툰스톨 목장주인 존 헨리 툰스톨이 숨지자 키드는 자경단까지 만들어 범인은 물론 보안관이 포함된 상대편을 사살했다. 보안관 가렛에 의해 체포된 키드는 교수형 직전 탈옥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추적에 나선 가렛에 의해 1881년 7월 14일 사살됐다.
이후 그는 최근까지 수많은 책과 영화, 노래, 발레 등을 통해 서부시대의 영웅으로 부활했고, 최근 개봉한 토니 헤인즈의 밥 딜런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에도 그 같은 정서의 음영이 짙다.
일부 역사가들은 “키드가 가렛의 총구에 숨지지 않았다”면서 “그는 텍사스로 이주해 살았으며 1950년에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주장한다. 아마추어 역사가인 게일 쿠퍼는 “오히려 보안관 가렛이 악명 높은 킬러였으며, 그의 키드 살해는 사기”라면서 “키드의 사면은 이런 대 사기극의 막을 내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툰스톨의 후손들은 “키드의 사면에는 명분이 없다”며 보안관 가렛 후손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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