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정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전임자가 추진한 사업을 중단하거나 전면 재검토하는 것에 대해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한국일보가 민선 5기 출범 한 달(1일)에 맞춰 지난주 전국의 지방행정 전문가 31명을 대상으로 새 지자체장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 이상이 사업 중단이나 전면 재검토는 행정의 비효율성과 예산 낭비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근주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책은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중대한 하자가 드러났을 경우 수정해야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외출 영남대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도 "객관적으로 볼 때 전임자 정책에 문제가 없는데도 소속 정당이 다르다고 재검토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전임 지자체장과 정책을 차별화하려는 성급함과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사업의 중단과 재검토는 유권자들의 선택이므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쏟아 냈다. 선거 기여에 따른 논공행상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쳐도 정도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전문성도 없는 사람이 공단 이사장이나 공기업 사장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면 지자체장의 인사권을 분산하거나 인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규환 중앙대 행정대학원장도 "자기 정책과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인사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반 직업공무원조차 줄을 세우는 형태로 변질돼 관료제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의 당적이 달라지거나 지방의회가 여소야대를 형성하면서 지방권력이 갈등에 휩싸인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김성윤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주당은 진보고 한나라당은 보수란 단순 구도 속에서 양당 지지자들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재홍 울산대 사회과학대 교수도 "주민복리 차원의 정책 갈등이라면 필요하고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지방정치는 중앙 무대의 세력이 그대로 지방으로 옮겨온 형태를 띄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당공천제 하에서는 이 같은 갈등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갈등 양상이 자연스럽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서울시장과 시의회가 싸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며 "갈등을 제도권에서 흡수하고 타협을 통해 해결해 나가면 결코 비효율적인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23명이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반면, '존속해야 한다'는 의견은 7명에 불과했다. 폐지 범위에 대해서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한해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20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까지 함께 폐지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3명 있었다.
민선 5기 한 달간 지자체에 대한 전반적 평가는 그렇게 후하지 않았다. '보통'이라는 응답이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못했다' '매우 못했다'는 응답은 각각 3명과 1명이었고 '매우 잘했다' '잘했다'는 답은 0명과 6명이었다. '출범 한 달밖에 안 돼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는 전문가도 10명에 달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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