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군대에서 들은, 강원도 민통선을 몰래 넘나들며 약초 캐는 사람들이 지뢰를 밟았을 때의 대처 요령. 지뢰를 밟았다고 느끼면 움직이지 않는다. 발을 떼는 순간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죽는다. 동료들이 지뢰를 밟은 사람 바로 뒤에 깊고 큰 구덩이를 판다. 그런 다음 지뢰 밟은 사람의 몸을 굵은 끈으로 묶어서 마치 어릴 때 실로 이빨을 뽑듯 획 잡아당겨 구덩이에 빠뜨린다. 그러면 생명은 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같은 무게의 돌을 올려놓는 동시에 발을 떼는 엉터리'비법'에 비하면 꽤나 그럴 듯하다.
■ 이론상으로 그럴듯한 이 비법도 아무 지뢰에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지뢰는 밟았다 발을 떼면 폭발하는 것이 아니다.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처럼 위에서 압력을 가하거나, 안전고리와 연결된 인계철선(Trip wire)을 잘못 건드려 줄이 당겨지면 터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M16A1 지뢰는 1m 정도 솟아올라 터지는 도약형 대인지뢰로 폭발 각도와 살상 반경이 커서, 설령 구덩이를 파서 그 속으로 떨어지더라도 별 소용이 없다. 실제로'약초꾼 비법'으로 지뢰를 밟고도 무사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 화약을 이용한 방어무기인 지뢰는 15세기 중국 명(明)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지뢰가 보편화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이고, 전차의 출현이 지뢰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세계 60여 개국에 약 1억1,000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반도에도 아직 100만개 이상의 지뢰가 묻혀있어 그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사람이 끊이질 않고 있다. 1996년 비인도적 무기금지 및 제한조약 회의에서 23개국이 지뢰 생산과 사용, 판매 금지를 선언했지만 북한 등에는 소 귀에 경 읽기이다.
■ 경기 북부지역에 지뢰 비상이 걸렸다. 북한에서 떠내려온 목함(나무상자) 지뢰가 30여 개나 발견되었고 사상자까지 나왔다. 목함지뢰는 압력을 가하거나, 줄을 건드리거나, 뚜껑을 열면 터지는 대인살상용으로 가벼워 물에 잘 떠다니는데다 나무필통처럼 생겨 겉보기에 전혀 폭발물 같지 않아 주워서 열어보는 순간 목숨을 잃는다. 지뢰는 땅속의 악마다. 인간이 심어놓은 그 악마가 땅속을 나와 돌아다니고 있다. 마수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가까이 가지도, 건드리지도 않은 게 상책이다. 악마는 늘 인간의 부주의와 호기심을 유혹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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