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고발 없이는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 ‘전속고발권’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 특례권한을 지키려는 공정위와, 사법적 기능의 일부를 공정위에 남겨두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검찰 사이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온 해묵은 논란이지만, 이번엔 그 양상이 좀 다르다.
종래엔 공정위와 검찰 간 ‘밥그릇 싸움’성격이 꽤 짙었지만, 이번엔 현 정부가 집권 후반기 최대 정책과제로 꼽고 있는 대ㆍ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공론화되고 있는 것. 거래 관계에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쪽에, 강자의 횡포에 맞설 유용한 수단(고소권)을 주자는 논리다.
1일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 사건은 반드시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공소가 가능하다. 피해자들이 검찰에 고발할 수도 없고, 범법행위를 포착해도 검찰이 스스로 기소할 수 없다는 뜻. 기소독점주의의 대표적 예외 조항인 것이다. 이 같은 전속고발권은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경제사건은 전문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은 불공정 행위나 하도급 횡포로 피해를 입더라도, 직접 처벌을 요구할 방법이 없다. 공정위에 신고할 수는 있지만, 정작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위반사건을 처리하면서 고발까지 가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실제로 공정위는 올해 들어 총 596건(5월말 기준)의 하도급법 사건을 처리했지만, 고발까지 이른 사건은 전무하다. 담합이나 기타 불공정행위 등을 다스리는 공정거래법 사건도 440건을 처리했지만 고발은 3건에 그쳤다. 대부분 시정명령이나 과장금으로 처벌이 끝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공정위가 칼을 칼집에만 꽂아두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행정ㆍ민사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고발권마저 행사하지 않으니 규율 공백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면서 “적어도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과 카르텔, 계열사 부당지원 등 중요 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만이라도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중소기업중앙회 등 제3자에게 고발권을 주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최근 정부의 친중소기업 보호 강화기류가 전속고발권 문제로 불똥이 튀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다. 한 고위관계자는 “중소기업 보호 차원에서만 이해할 게 아니라 사실상 1심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공정위의 경쟁정책 전반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조정을 주선하고, 그게 안될 경우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같은 제재를 하고 있는 만큼 ‘솜방망이’처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전속고발권이 페지돼 고소ㆍ고발이 남발될 경우 기업의 경제활동에 미치는 부작용이 너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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