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추진 중인 대북 금융제재 수위가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21일 한미 외교ㆍ국방장관회담에서 고강도의 금융제재 방침을 공언할 때만해도 미국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든 돈줄을 틀어 막을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미 외교 당국자들의 입에선 직접 제재보다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는 발언이 부쩍 늘고 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이란과 북한은 다른 나라”라며 “두 나라에 동일한 접근법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고립과 내핍 경제로 버티는 나라이고, 이란은 원유 등 에너지 자원을 갖고 살아가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란 제재 방식처럼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을 자국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하는 강경 대책을 구상했었다.
미국이 ‘맞춤식 대북 제재’로 돌아선 배경은 “북한 지도자들은 고립을 꺼리지 않는 것 같다”는 로버트 아인혼 대북제재 조정관의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북한은 과거에도 수 차례 고립 상황을 경험했던 터라 고립 심화가 오히려 체제 결속이나 핵실험 등 돌발 행동의 빌미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제재의 파급력을 극대화할 수 없다는 점도 수위 조절에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제3국 금융기관과 북한 간 거래를 중단시키려면 해당기관에 북한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막대한 비자금을 잘게 쪼개 여러 은행에 가차명으로 분산 예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의 불법 금융거래 정보를 수집하기라 쉽지 않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를 통해 금융제재의 위력을 톡톡히 겪은 뒤 대부분의 대외 금융활동 창구를 중국 내 소규모 은행으로 옮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은 제재와 압박을 근간으로 하되 유연성을 꾀하는 쪽으로 추진될 듯하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입법 형태가 아닌 행정명령에 근거해 제재하려는 것은 북한의 반응과 제재 효과를 봐가며 압박 강도를 높일지, 아니면 출구전략을 모색할 지 검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검토 중인 새로운 행정명령이 북한이라는 특정 국가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에 미치는 충격파는 법률 못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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